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세계 최대 전기차 제조 업체 테슬라가 15억 달러(약 1조 7,000억 원)에 달하는 비트코인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머스크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테슬라의 높은 인기를 앞세워 비트코인 결제를 확산시키고 이를 통해 다른 사업 분야에서도 암호화폐를 활용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비트코인을 발판으로 전기차·에너지·우주탐사 등 다양한 미래 사업에서의 입지를 빠르게 넓히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변동성이 큰 암호화폐를 사업에 활용한다는 점에서 우려 섞인 시각도 적지 않다.
테슬라는 비트코인을 받고 자사 전기차를 팔 예정이라고 8일(현지 시간) 밝혔다. 미 경제 매체 CNBC는 테슬라가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인정한 첫 자동차 제조사라고 설명했는데 전기차를 살 때는 물론 차 소프트웨어에 탑재된 콘텐츠를 구매할 때도 비트코인이 사용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 고객들이 자율주행 기능을 통해 차 안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만큼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를 비트코인을 통해 결제할 경우 이는 테슬라의 주요 수익원이 될 수 있다.
시장에서는 테슬라가 보험 등 자동차 관련 금융 상품에도 비트코인을 활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테슬라는 2019년 자사 차량 전용 보험을 출시한 바 있다. 차량 소프트웨어를 통해 쌓인 고객의 운전 습관과 사고 기록 등을 종합해 보험료를 책정하는데 기존 보험료보다 최대 30% 저렴하다는 게 테슬라 측의 설명이다.
이는 테슬라가 단순히 자산 관리 차원에서 비트코인을 보유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JMP증권의 조 오샤 애널리스트는 테슬라가 종종 현금 관리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나 이는 사실이 아니라면서 테슬라의 현금 창출 능력 측면에서 이번 비트코인 투자는 “매우 사소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투자는 테슬라가 고객에게 직접 자동차를 판매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처럼 차를 판매하는 방식을 재설정하려는 회사의 또 다른 파괴적 행보라고 평가했다. 테슬라가 딜러를 거치는 중간 판매 단계를 없앤 데 이어 자동차 업계에 새로운 혁신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비트코인 매입을 계기로 민간 우주탐사 업체 스페이스X와 터널 굴착 회사인 보링컴퍼니 등 머스크가 세운 다른 미래 사업에도 암호화폐가 쓰일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머스크는 화성에 가능한 한 빨리 자급자족이 가능한 도시를 세우고 싶다면서 “화성 경제는 암호화폐로 운영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오는 2024년 스페이스X 탐사선을 화성에 착륙시키겠다고 공언한 가운데 우주에서 암호화폐를 활용할 뜻을 드러낸 것이다. 포브스는 “억만장자 기업가 머스크에게 화성 유인 탐사는 먼 미래가 아닌 단기 목표”라며 “머스크가 비트코인을 화성으로 보내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물론 테슬라의 비트코인 매입이 역풍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크리스토퍼 슈바르츠 UC어바인대 교수는 “테슬라에 부품 등을 납품하는 업체들은 비트코인을 대가로 받지 않기 때문에 통화 측면에서 리스크를 불러오는 것과 같다”고 분석했다. 미국 자동차 전문사이트 에드먼즈닷컴의 제시카 칼드웰 총괄 디렉터는 “대부분 사람들이 차를 사기 위해 대출을 받거나 할부를 이용하는 만큼 비트코인을 통해 한번에 지불하는 방식이 흔한 일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비싼 차 구매를 위해 암호화폐의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도 꺼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기혁 기자 coldmet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