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 온’을 하면서 ‘내가 기다려보길 잘했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내가 믿어주면 그걸 해내는 팀이 있다는 걸 느꼈죠. 이렇게 한없이 따뜻한 드라마를 만난 덕분에 배우로서 특별한 경험을 했어요. 이 일을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배우 최수영은 최근 종영한 JTBC ‘런 온’에서 재벌가 출신의 커리어우먼 서단아 역을 맡아 호평을 받았다. 그는 냉철한 카리스마를 가진 서단아가 순수한 미대생 이영화(강태오)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매력적으로 그려냈다. 서단아 역을 처음 제안받았을 때 의아했다는 그는 한편으로 자신도 모르는 모습을 알아봐 준 것에 신이 났다고. 박시현 작가가 보여준 신뢰도 그의 과감한 도전에 큰 몫을 담당했다.
“작가님께서 제 작품을 빼놓지 않고 봤더라고요.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임했는지 그 마음도 알고 있고요. 팬이어야 알 수 있는 포인트인데, 배우 최수영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게 느껴져서 감동받았어요. 내가 ‘서단아와 나?’라는 물음표를 떠올릴 때 작가님께서 ‘(서단아를 연기할 사람은) 수영 씨밖에 없다고 생각해요’라고 하시는 순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죠.”
‘런 온’은 청춘 로맨스 드라마인 만큼 2030세대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서단아는 많은 여성들의 워너비로 꼽히기도 했다. 정작 최수영은 어린 나이에 리더가 된 여자 캐릭터가 드라마에서 흔치 않았기에 부담이 있었다.
“서단아가 멋있어야 많은 사람들이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야무지게 일도 잘하고 실력도 있구나’라는 생각할 것 같아서 일 잘하는 여성 캐릭터에 집중했어요. 처음에는 젊은 여성 리더들만 상상하면서 말투를 설정했어요. 굉장히 편한 저지를 입고 머리를 질끈 묻고 태블릿을 들고 일등석을 타는 여자를요. 그런 여자에게 내가 말을 건다고 생각하니 무례한 말투가 아니라 이유 있는 당당한 말투가 떠올랐어요. 감독님은 동갑내기인데 맞먹을 수 없는 또라이의 느낌이 난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의도했던 거였어요.”
‘런 온’은 말맛이 있는 작품으로 통하기도 한다. 그 역시 많은 대사들이 여운에 남았다. 그중에서도 기선겸(임시완)이 ‘네가 믿어주면 그걸 해내는 사람은 내가 한 번 돼 볼게’라고 하는 부분을 보고 많이 울었다. ‘런 온’이 그에게 그런 존재였기 때문이다.
“배우 활동을 하면서 때로는 내가 작품에 애정을 갖고 열정을 쏟더라도 사람들이 냉정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하더라고요. 현장에서 힘든 것 때문에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없는 순간들도 있었고요. 이번 드라마는 내가 애정을 가지면 갖는 만큼 ‘이 배우가 나를 믿어주니까 해내봐야지’라는 피드백이 여실히 느껴지는 작품이었어요.”
“서단아가 무례해 보일지라도 결핍 있는 캐릭터로 할 수 있었던 것도 작가님이 서단아의 성장과 서사를 잘 풀어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인간으로서 배역으로서 너무 위로를 받은 작품이에요. 그 한마디가 ‘런 온’을 다 설명해 주는 대사가 아닌가 싶어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위치지만 서로에게 빠진 서단아와 이영화의 사랑 또한 시청자들의 많은 응원을 받았다. 드라마이기에 현실적이지 않은 관계 설정이었지만, 결국 이별을 선택하고 서로의 위치를 찾아가는 모습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늘 단단하게 느껴지던 서단아가 이영화와 이별을 맞이하며 처음으로 어린아이처럼 펑펑 우는 모습은 최수영에게도 의아한 모습이었다.
“이영화가 갑자기 찾아와서 ‘이건 온전히 당신만을 위한 결정이다. 당신을 사랑해서 포기하는 게 아니라 사랑해서 내린 결정’이라는 대사를 하는데, 대본에서는 ‘이영화를 안고 애처럼 우는 서단아’라고 쓰여 있었어요. 이 사람 앞에서는 온전한 내가 될 수 있었다는 걸 서단아도 알고 있었는데 손쉬운 이별로 변질시켰던 죄책감과 내가 아무리 못난 모습을 보여도 나를 사랑해 주는 무한대의 사랑을 보고 무장해제 된 감정인 것 같아요. 작가님이 ‘서단아도 언제쯤 울 거야’라고 했는데 혼자 차 안에서나 사무실에서 혼자 울 거라고 상상했거든요. 그런데 의외로 영화 앞에서 울더라고요.”
최수영은 서단아를 연기하면서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완벽하게 일 처리를 하고 싶어 하고, 모든지 잘 하고 싶어서 고군분투하는 점이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서단아처럼떠오른 생각을 바로 말로 뱉어내진 않지만, 그렇게 해보고 싶던 마음이 해소돼 후련하기도 하다.
“서단아를 보면 참 소녀시대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처음부터 사랑받은 사람 같고 다 주어지고 완벽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완벽하기 위해 쫓기듯 살거든요. 조금이라도 쉬는 시간에는 자기 관리에 힘쓰고요. 남들이 보는 만족할 만한 기준에 들어가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면서 사는 게 한창 활동할 때의 소녀시대 멤버들을 보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서단아를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런 온’이 받았던 사랑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크더라고요. 열렬한 성원이 종영한 후에도 끊이지 않는 것을 보니 서단아를 떠나보내는 게 슬프지는 않아요. 두고두고 회자될 수 있을 것 같고, 나도 곱씹어 볼 수 있는 대사가 있어서 책처럼 자주 들춰볼 것 같아요. 어떤 캐릭터를 떠나보내고 다른 캐릭터가 온다는 생각은 해본 적은 없어서 앞으로도 서단아는 서단아 대로 내 마음속에 있을 거예요.”
/추승현 기자 chus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