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4년 전부터 호텔 투자 붐...코로나 장기화에 곳곳 '부실'

[해외부동산투자 리스크 현실화]
해외銀 믿고 투자 나섰던 기관들, 여행업 악화에 손실 떠안아
선순위 대출자 담보권 실행에 울며겨자먹기식 자금 투입도
기관들 해외자산 줄줄이 정리...글로벌 운용사 헐값에 매입


지난해 1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대형 호텔 리조트 개발 사업인 ‘더 드루’ 프로젝트에 투자한 국내 투자자들은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5월부터 사실상 디폴트 상황으로 원금과 이자를 받지 못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더해 사업 시행사인 위트코프그룹이 개발 자산 등에 대한 모든 권리를 선순위 투자자에 넘긴다는 내용이었다. 선순위 투자자가 권리를 다른 곳에 팔면 중·후순위 투자자들은 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국내 투자를 주선한 증권사들은 약 4,000억 원에 권리를 인수, 호텔 자산을 확보해 원금 손실을 막기로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3개월여가 지난 9일(현지 시각)까지 5개 증권사 중 2곳만 참여하고 1,500억 원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결국 호텔 자산에 대한 권리는 물론 투자금 3,000억 원을 모두 날리게 됐다.


국내 기관투자가의 해외 부동산 대체 투자 대규모 손실이 현실화됐다. 담보가 있고 비교적 안전하다고 평가받아온 메자닌 대체 투자도 원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근본적으로 상품 구성 문제뿐 아니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비슷한 사례가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상당히 많은 해외 대체 투자에서 부실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문제가 불거지는 해외 부동산 투자는 주로 호텔 자산에 중순위 메자닌 형식으로 투자한 경우다. 호텔을 건설할 때 드는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선순위 대출을 현지의 대형 은행에서 맡으면 국내 증권사가 중순위 메자닌과 후순위 지분 투자를 맡고 이를 다시 공제회·보험사 등 기관투자가나 부동산 공모 펀드를 통해 일반 개인에게 되파는 식이다. 2018년부터 해외 부동산 투자 붐이 급격히 일었을 때 이 같은 투자 구조는 국내 투자 업계가 제일 선호했다. 현지 사정을 가장 잘 아는 해외 은행이 먼저 투자 심사를 한데다 선순위 대출보다 투자 수익률이 높은 중순위 투자는 일정 이상 수익을 내 회원에게 돌려줘야 하는 공제회의 구미에 맞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투자에 선순위로 들어온 해외 대형 은행에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할 때 수익이 예상보다 절반으로 떨어지는 경우까지 고려해 투자를 집행했고 국내 투자업계도 믿고 중순위 투자에 나섰다”면서 “코로나19 상황이 이렇게까지 호텔업에 타격을 줄지는 해외 대형 은행 조차 생각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몇몇 투자 건은 손실을 막기 위해 국내 투자자가 추가로 투자를 집행했다. 2~3년 후 업황이 개선되면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미래에셋은 2016년 미국 하와이에 있는 하얏트리젠시 와이키키 호텔에 지분과 메자닌 형태로 약 9,000억 원을 투자했는데 당시에는 6%의 수익률이 예상됐다. 그러나 호텔 영업이 사실상 중단돼 이자가 나오지 않자 미래에셋이 추가로 투자해 선순위 대출을 갚으며 버티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도 과거 메자닌 형식으로 투자한 애틀랜타 호텔에 이자가 나오지 않자 이자를 대납해 선순위 투자자를 빼고 상황이 좋아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NH투자증권·롯데손해보험·신한캐피탈은 2018년 미국 뉴욕 20타임스스퀘어 빌딩 개발 사업에 메자닌으로 투자했다. 하지만 계획했던 준공 승인이 늦어지면서 디폴트 상태가 됐다. 이 밖에 메리츠금융그룹이 2018년에 한 미국 클럽 쿼터스 호텔 메자닌 대출 투자(720억 원) 역시 호텔 영업에 차질을 빚으면서 이자가 제때 나오지 않아 위험한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말 기준 국내 투자자의 해외 부동산 펀드는 총 55조 6,000억 원 규모다. 이 중 41조 2,000억 원이 은행·증권사·자산운용사·보험사·공제회 등이고 일반 법인은 13조 5,463억 원, 개인은 8,620억 원을 투자했다.


론스타를 비롯해 콜로니어캐피털·에리스 등 해외 부동산 전문 자산운용사는 한국의 불리한 상황을 투자 기회로 삼고 있다. 대규모 자본을 무기로 투자 자산을 싸게 사들인 뒤 호텔업황이 좋아질 때를 기다렸다가 수익을 내는 전략이다. 특히 보험사 등 주요 투자자는 올해 3월까지 외부 감사인으로부터 투자 자산에 대한 공정 가치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자산 할인 매각을 감수할 수 있다. 이번 더 드루 역시 미국 유명 패밀리오피스(부유층의 자산 관리회사)가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기관투자가는 “코로나19로 예상했던 수익이 나오지 않는 만큼 일부 자산을 재매각하는 등 기존 투자 포트폴리오 재정비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세원 강도원 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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