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당 축소 권고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한시적 조치로서 대부분 해외 금융당국이 실시하고 있습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8일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금융사 배당 제한이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적법한 조치였다고 적극 반박하고 나섰다. 지난해 호실적을 기록한 금융지주들이 올해 6월까지 배당을 순이익의 20% 이내로 제한하라는 금융당국의 권고에 결산 배당 성향을 오히려 낮추기로 결정하자 주주들의 불만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금융당국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대부분 국가가 코로나19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더 엄격한 자본 관리를 규율하고 있으며 이번 배당 제한 조치가 국내 은행의 신용도에도 긍정적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금융사들도 당국의 배당 제한 권고 자체에 대해서는 숫제 반기는 반응이다. 지난해 금융당국이 명확한 기준 없이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을 자제하라’는 구두 경고만으로 혼란을 키웠던 때에 비하면 이번처럼 공식적인 스트레스 테스트(재무 건전성 평가)에 근거한 규제비율을 제시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애초 배당 제한 조치를 둘러싸고 비판이 제기됐던 이유를 고려하면 ‘국제적 기준에 부합한다’는 설명만으로는 불만을 잠재우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당국이 은행의 손실흡수능력을 높이라며 배당 제한을 권고하는 마당에 여당은 금융권에 이익공유제 동참을 압박하는 ‘이중 잣대’가 논란을 불러일으킨 배경이기 때문이다.
앞서 금융위는 지난달 27일 은행과 은행지주사에 순이익의 20% 이내에서 배당을 실시하라고 권고했다. 코로나19에 따른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선제적인 자본확충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금융당국이 은행권 배당에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하는 등 불만이 제기됐다.
이에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8일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코로나19 상황에서 전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배당 제한 등 엄격한 자본관리를 권고하고 있다”며 “바젤위원회 조사 결과 지난해 10월 기준 전 세계 주요 30개국 중 27개국이 배당 제한 등 자본보전 조치를 실시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럽연합(EU) 은행들에 올해 말까지 순이익의 15% 이내에서 배당할 것을 권고했다. 당국은 “주요 EU 은행의 평상시 배당성향이 40% 수준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최근 5년 평균 24% 수준)보다 엄격한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당국은 배당 제한의 기준이 된 스트레스 테스트에 대해서도 “합리적·객관적으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당국은 경제성장률이 -5.1%를 기록했던 1997년 외환위기보다 더 심각한 위기 상황(-5.8%)을 가정하고 경기성장세가 ‘L자형’의 장기 침체에 들어가는 시나리오에서도 은행지주 재무 건전성이 유지되는지 여부를 평가했다.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배당을 제한하라는 것인데, 이렇게 설정된 테스트에서는 신한금융이 유일하게 배당 제한 규제 비율을 웃돈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당국이 스트레스 테스트 기준을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잡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 당국은 “스트레스 테스트 시나리오는 통상적인 경제 전망치보다 더 비관적인 위기 상황을 고려해 설정하는 게 원칙”이라며 “해외 금융당국은 우리나라보다 더 보수적인 경기 침체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국이 배당 제한 조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추가 설명에 나섰지만 최근의 ‘관치·정치 금융’을 둘러싼 불만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이익공유제, 서민금융기금 상시 출연 확대, 이자 수취 제한 등 선심성 압박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배당 제한 조치가 맞물렸기 때문이다. 금융권 안팎에서 “배당을 줄인 돈으로 이익공유제에 참여하라는 것이냐”는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앞서 지난해 12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4대 금융지주 회장과의 통화에서 예대 금리 차가 크다고 언급해 정치권이 사기업 마진에까지 관여한다는 논란이 일었다. 이어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금융권을 이익공유제 주요 참여 대상으로 지목하며 은행이 한시적으로 이자를 멈추거나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배당 제한 권고 자체는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주주 환원보다 자본 확충을 우선할 근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긍정적”이라며 “문제는 민간 상장기업에 ‘배당은 하지 말라’면서 ‘코로나 피해 복구를 위한 공공 자금을 내놓으라’는 태도”라고 말했다. 이어 “정치권에서 은행이 이자를 받으면 안 된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해외 대부분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일이냐”고 꼬집었다.
금융지주의 한 관계자는 “국내 은행주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심리가 나빠진 것은 정치 금융 리스크가 가장 큰 원인”이라며 “최근의 관치·정치금융 논란이 단순히 배당 제한 권고 때문이라고 인식한다면 지나치게 나이브한 것”이라고 말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