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첫날인 지난 11일 오후 경남 창원의 한 멀티플렉스 극장. 예년 같으면 극장에 몰려든 관객들을 실어 나르느라 분주했을 세 대의 승강기가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멈춰 있었다. 상영관 입장에 앞서 시간을 보내는 라운지에는 중년 남성 한명만이 의자를 차지하고 있었다. 팝콘과 음료를 파는 매대에도 직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연휴를 겨냥해 개봉한 ‘몬스터 헌터’의 상영 시각인 오후 1시가 가까워지자 겨우 10명 안팎의 관객만이 극장을 매웠다. 한 직원은 “연휴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사람들이 밖에를 안나가다 보니 아무래도 지난 추석 때보다도 사람이 적은 듯하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내려진데다 5인 이상 사적 모임도 금지되면서 대목이라는 설 연휴임에도 극장가를 찾는 발걸음이 크게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13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월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 178만 6,123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84만여 명에 비해 약 89% 감소했다. 지난해 한국 영화산업 전체 매출 추정치는 9,132억 원으로 집계돼 직전 년도 매출액인 2조5,093억 원 대비 63.6% 준 것으로 나타났다.
연휴 극장가에 내걸린 작품 면면에서도 영화 업계의 얼어붙은 분위기가 엿보였다. 설 연휴를 겨냥해 ‘새해전야’, ‘몬스터 헌터’ 등의 작품이 개봉했지만 예년 블록버스터 작품에 비해 ‘체급’이 작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극장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개봉 편수로 비교하면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관심도나 제작비 투입 규모 등을 고려했을 때 사람들의 흥미를 끌 여지가 적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 극장 앱 예매 창에서도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작품은 신작이 아니라 개봉된 지 수년이 지난 4D 버전의 해리포터 시리즈다.
관객이 줄자 대작들은 잇달아 개봉을 연기하고, 개봉 연기는 다시 관객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극장가의 영업 난을 가중하고 있다. 수도권 기준 현재 적용되는 좌석 띄어앉기 규정에 따라 가용되는 좌석은 최대 50%다. 영화제작사와 배급사 등의 업계의 수익률도 줄어들 수밖에 없어 개봉을 꺼리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대작들마저 개봉을 연기해 관객들이 극장을 찾을 이유가 더 없어지면서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CGV의 한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개봉했을 때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을지 확신이 안되니 제작비가 많이 투입된 기대작들이 작년에 개봉을 대거 연기했다. 코로나 확진 세가 완화되기 전까진 개봉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기면 쏟아지는 각종 이벤트나 프로모션도 대폭 감소됐다. 롯데시네마의 한 관계자는 “통상 이런 시기엔 혜택이 큰 대규모 프로모션이 진행되는데 이번에는 종류나 규모가 많이 적어졌다. 영화가 개봉하는 게 별로 없다보니니 영화 관련 이벤트도 많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를 보며 연휴를 보내려하지만 극장을 찾기는 망설이는 발길 잃은 수요를 잡기 위해 ‘넷플릭스’, ‘왓챠’ 등 OTT(Over the top) 업계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다. 왓챠는 연휴를 맞아 독점작들을 공개해 신규 구독자를 적극 유입한다. 실제 지난 추석 연휴가 낀 주의 왓챠 시청 량은 직전 주에 비해 47.1% 증가했으며 그만큼 신규 유입자들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왓챠는 정확한 구독자 수 증가 폭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설 연휴를 대비해 한 OTT 서비스를 가입했다는 김석진(35) 씨는 “원래 연휴 때면 이모들이랑 극장을 많이 찾았는데 올해는 이모들 얼굴도 보기 힘들 것 같고 외출하기도 애매해 서비스에 가입했다”고 밝혔다.
/허진 기자 hj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