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아마존’ 쿠팡의 모회사가 미국 증시 입성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국내 e커머스 업체부터 쿠팡 협력 업체까지 주가가 요동치고 있다. 쿠팡이 최대 60조 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게 되면서 경쟁사가 ‘할인율 축소’ 나비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됐다. 국내 e커머스 시장 1위 사업자 네이버(NAVER(035420))는 시가총액 80조 원을 달성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면서 역대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하지만 단순히 쿠팡과 연관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당수 종목들의 주가가 치솟는 현상도 나타나 ‘묻지 마 급등’에 대한 경고등이 켜졌다.
15일 SK증권은 쿠팡의 기업 가치가 60조 원에 수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 언론이 상장 후 적정 가치를 30조~55조 원으로 추산하는 것에 비춰보면 다소 공격적인 전망치로 코스피 시총 4위인 네이버(63조 원)에 버금가는 규모다. 앞서 지난 12일 쿠팡LLC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을 위한 신고서를 제출했다. 쿠팡의 지분 100%를 들고 있는 미국 법인 쿠팡LLC가 사명을 쿠팡INC로 바꾼 뒤 상장한다.
SK증권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수혜로 지난해 쿠팡의 매출액이 2배 가까이 성장했고 성장주의 시장 가치 산출에 적용되는 주가매출비율(PSR)이 4.08배에서 4.20배로 상향된 결과 쿠팡은 60조 7,000억 원 수준의 기업이라는 결과가 도출된다고 설명했다. 유승우 SK증권 연구원은 “쿠팡이 나스닥이 아닌 뉴욕 증시 상장을 타진한 것은 풀필먼트 서비스를 통해 흑자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라며 “목표 PSR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지난 4년간 쿠팡의 두 자릿수 성장률에 비춰보면 (기업 가치 계산에 적용된) 올 성장률 9%는 보수적인 수치”라고 밝혔다.
쿠팡이 온라인 쇼핑 업체의 가늠자 역할을 하며 경쟁사가 재평가 기회를 맞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쿠팡이 미국에서 대박을 터뜨리면 국내 e커머스 기업의 높은 할인율이 부각되면서 ‘싸다’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날 주식시장에서 쿠팡과 국내 쇼핑 1인자 자리를 두고 다투는 네이버는 전 거래일 대비 5.18% 상승한 38만 5,500원에 종료했으며 장 중 설립 후 최고가(38만 8,000원)를 경신했다. 최근 e커머스 사업에 힘을 주고 있는 이마트(139480)도 2.59% 반등했다.
쿠팡발 나비효과에 대비해 증권 업계는 동종 업체의 가치를 빠르게 재산정하는 모습이다. 이날 현대차증권은 네이버의 가치를 기존(73조 9,000억 원) 대비 8조 4,000억 원 상향한 82조 3,000억 원으로 올렸다. 8조 4,000억 원은 오롯이 쇼핑 사업부의 가치 제고에서 비롯됐으며 쿠팡의 가치를 34조 원으로 설정하고 자체 배송망이 부재한 네이버의 열위를 감안한 할인율(40%)을 적용한 결과다. 김현용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네이버는 높은 포인트 적립률 등의 강점으로 확고한 생태계를 보유했다”며 목표 주가를 이전 45만 원에서 50만 원으로 올렸다. 이 밖에 온라인 쇼핑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이마트와 롯데쇼핑(023530)의 재평가 진행, 네이버와 물류 협업를 펼치는 CJ대한통운(000120)에 대한 차별적 가치 부여도 예상된다.
한편 이날 쿠팡이 주식시장을 뒤덮으면서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관련 주로 분류된 제지·물류·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종목들이 무더기로 급등했다. 이날 쿠팡과 물류 운송계약을 체결한 동방(004140)이 상한가에 오른 것을 비롯해 OTT에서 협업을 하고 있는 KTH(036030)도 가격제한폭까지 치솟았다. 이 밖에도 영풍제지(006740)와 미래생명자원·KTcs 등 쿠팡과 관련 있는 다수의 상장사들이 ‘묻지 마 급등’세를 연출했다.
하지만 자금을 수혈한 쿠팡이 ‘고객이 원하는 모든 것은 쿠팡에서’라는 목표에 따라 적극적 사업 행보를 전개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타당하지만 낙수 효과의 강도를 따지지 않은 투자는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 치료제 등 수많은 관련 주가 활개를 쳤지만 분위기가 일시에 돌변해 결국 제자리를 찾아갔기 때문이다. 금융 투자 업계 관계자는 “쿠팡 관련 업체가 동반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어닝 시즌’인 만큼 투자 전 지난해 실적 정도는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승배 기자 ba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