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5일 한층 더 강화된 ‘2030 온실가스 관리 기준’을 내놓자 자동차 업계에서는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는 우려가 터져나왔다. 실제로 자동차 업계는 정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오는 2030년 온실가스 배출 기준으로 77g/㎞을 제시했지만 환경부는 결국 이보다 9% 더 낮은 70g/㎞을 이날 최종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업체들의 온실가스 부담을 더 키운 셈이다. 현재 온실가스 배출량을 적용할 경우 국내 하이브리드차량(HEV) 중 현대 아이오닉(69g/㎞)만 간신히 이 기준에 턱걸이해 나머지 하이브리드차량들은 모두 과징금을 물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하이브리드차도 기술적 개선이 있겠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이 영(0)으로 잡히는 전기차와는 근본적으로 경쟁이 어렵다”며 “국내 자동차 업체들은 아예 전기차를 생산하지 않거나 아직까지는 내연기관에 더 경쟁력이 있어 장기적으로 자동차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자동차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시장은 중대형 차를 선호하는 성향이 강해 온실가스 규제에 더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현재 규제 기준 자체도 유럽(2020년 기준 95g/㎞)과 별 차이가 없는 세계 두 번째 강도지만 이 같은 시장 차이를 고려하면 국내 환경 규제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규제는 전기차 판매가 없거나 저조한 르노삼성·한국GM·쌍용차 등에는 치명적이다. 이들 업체들은 2030년 온실가스 배출 허용 기준인 70g/㎞은 물론이고 올해 기준인 97g/㎞을 맞추기도 불가능하다. 또 다른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환경부가 발표한 규제는 내연기관 차량은 판매할수록 과징금이 커질 수밖에 없는 수치”라며 “아직 내연기관차 중심인 외국계 완성차 3사는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데 과징금 폭탄까지 맞는 상황에 내몰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온실가스 기준에 따라 르노삼성과 쌍용차가 물어야 할 과징금은 각각 393억 원, 388억 원에 이른다. 수입차 업체인 피아트크라이슬러(FCA)의 과징금도 23억 원으로 추산된다.
중견 자동차 회사들의 전기차 판매량을 보면 지난해 한국GM 전기차 볼트는 내수 시장에서 1,579대 판매에 그쳤고 르노삼성의 트위지와 조에는 각각 840대, 192대 팔렸다. 한국GM은 전기차 판매량이 내수 판매량 8만 2,955대의 1.9%, 르노삼성은 9만 5,939대의 1.1%에 불과하다. 쌍용차는 판매 중인 친환경차가 아예 없다. 지난해 국내에서 1만 1,826대를 판매한 테슬라와 비교하면 차이가 극명하다.
현대·기아차도 안심할 처지가 아니다. 기아차는 지난 2019년 기준 온실가스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일반 차량 기준 약 186만g·대/㎞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는데 여기에 g/㎞당 과징금 3만 원을 적용하면 벌금 규모가 약 558억 원에 이른다. 물론 기아차의 경우 과거 3년 동안 온실가스 기준을 초과 달성해 ‘저축’해놓은 온실가스 물량이 있었지만 앞으로 꾸준히 규제가 강화될 예정이어서 과징금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현대차도 간신히 온실가스 ‘흑자’를 내기는 했지만 초과 달성분이 5만 3,520g·대/㎞에 그쳐 올해부터 벌금 걱정을 해야 할 처지에 몰릴 가능성이 있다.
과징금을 내지 않으려면 타 업체와의 실적 거래를 통해 미달성분을 해소하라는 환경부 방침에 대해서도 자동차 업계는 “외국 전기차 업체들의 국내 사업 환경을 유리하게 만들 것”이라며 역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테슬라와 같은 전기차 전문 업체는 차를 판매하면 할수록 온실가스 배출 기준을 초과 달성하게 되는데 이를 국내 업체들에 팔아서 수익을 내고 사업 기반을 다질 수 있다는 얘기다. 테슬라는 외국에서도 친환경차에 부여되는 크레디트를 팔아 흑자 전환에 성공한 바 있다. 전기차 시장의 선점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테슬라뿐 아니라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국내 상륙 유인이 커질 수 있다는 게 자동차 업계의 우려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탄소 중립’ 정책을 따른다 해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국내 완성차 업계의 주력 모델이 고효율 하이브리드차와 내연기관차인 만큼 안정적 매출을 바탕으로 전기·수소차 분야에서 기술 발전을 이뤄낼 수 있을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김태년 미래모빌리티 연구소장은 “내연기관에 거는 규제의 강도가 세질수록 역설적으로 전기차의 경쟁력이 약해지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서일범 기자 squiz@sedaily.com, 박한신 기자 hs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