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미국 IBM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던 빌리 마르쿠스는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렸다. 당시 유행했던 가상화폐 열풍을 풍자하고 싶었던 그는 비트코인과 달리 만들기 쉽고 재미도 있는 가상화폐를 내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마르쿠스는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 있던 일본 시바견을 마스코트로 삼아 ‘도지코인(dogecoin)’이라고 명명했다. ‘도지(doge)’는 영어 단어 ‘개(dog)’를 살짝 바꾼 말로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서 일본 시바견을 활용한 다양한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사진이나 영상)이 유행하는 현상을 빗댄 것이다. 마르쿠스는 장난 삼아 인터넷에 도지코인 개발 계획을 올렸는데 어도비의 마케팅 전문가 잭슨 팔머가 참여 의사를 밝히며 아이디어는 현실이 됐다. 도지코인의 가장 큰 특징은 발행 상한선이 없다는 점이다. 최대 2,100만 개로 정해진 비트코인과 달리 무제한 생산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덕분에 1년에 52억 개 이상의 새로운 도지코인이 생겨난다.
최근 도지코인 열풍이 뜨겁다는 소식이다. 일론 머스크가 지난 10일 트위터에 “작은 X(아들)를 위해 도지코인을 샀다”고 올린 직후 도지코인 가격은 0.08달러까지 치솟았다. 지난달 20일 0.009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20여 일 만에 800%나 폭등한 셈이다. 머스크는 15일에도 “도지코인 주요 보유자들이 코인을 팔면 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것”이라며 재차 구매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비트코인 가격도 16일 5,400만 원을 넘어서는 등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BNY멜론은행은 최근 가상화폐에 대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모건스탠리의 자산 운용사도 투자 대상에 추가하면서 가상화폐가 자산 시장에서 주류 통화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상화폐가 기존 화폐와 함께 통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금융 당국이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조언도 뒤따른다. 반면 순식간에 급등락을 거듭하는 만큼 주의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묻지마 투자’ 열풍에 휩싸여 ‘빚투’에 나설 경우 커다란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가상화폐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봐야 할 것 같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