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소비'로 풀리지 않는 '시중에' 풀린 돈 261兆

지난해 통화량 261조 늘어 3,200조
부동산·주식 등 자산시장 등 유입
경제 활력 유통속도는 최저 수준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대응 과정에서 260조 원이 넘는 돈이 늘어나면서 시중 통화량이 3,200조 원에 육박한 것으로 집계됐다. 돈은 역대 최대 규모로 풀렸지만 본원통화가 창출한 통화량을 보여주는 통화승수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늘어난 돈이 투자·고용·소비로 돌면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저 현금을 들고 있거나 부동산·주식 등 자산 시장에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소비·투자로 이어질 수 있는 출구는 막아놓고 긴급재난지원금 등 돈만 쏟아부은 결과 시중에 돈은 많아졌는데 돌지 않으면서 경제 활력이 떨어지는 ‘돈맥경화’ 현상이 심화됐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2월 광의통화(계절조정계열 M2 평잔 기준)가 3,191조 3,000억 원으로 전월 대비 13조 원(0.4%) 증가했다고 17일 밝혔다. 2년 미만 정기 예적금(8조 6,000억 원), 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7조 9,000억 원)을 중심으로 늘어났다. M2는 현금과 요구불예금, 머니마켓펀드(MMF), 만기 2년 미만의 정기 예적금 등으로 구성된 지표로 각 경제주체들이 통화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지난해 연간 M2(평잔 기준)는 3,070조 8,000억 원으로 지난 2019년 연간 M2(2,809조 9,000억 원) 대비 260조 9,000억 원 늘면서 1986년 통계 작성 이후 사상 최대 증가액을 기록했다. 증가율 기준으로는 9.3% 늘어나면서 2010년(10.3%)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안을 네 차례 편성하고 한은도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0.5%로 낮췄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업·가계 등 경제주체들이 돈을 가지고만 있을 뿐 투자나 소비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은이 본원통화를 1원 공급했을 때 신용 창출 등을 통해 창출되는 통화량(M2)을 보여주는 통화승수는 2019년 12월 15.62배에서 지난해 12월 14.51배로 떨어졌다. 본원통화가 줄면서 역대 최저 수준이었던 지난해 11월(14.44배) 대비 소폭 반등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통화승수 하락은 경제주체들의 현금 보유 성향이 높아지고 신용 창출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통화유통속도도 지난해 2분기 사상 최저 수준인 0.619까지 떨어졌다가 3분기 0.626로 소폭 반등하는 데 그쳤다. 통화유통속도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M2로 나눠 계산하는데 2012년 2분기 0.801, 2018년 4분기 0.712 등으로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다. 정부나 한은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돈을 아무리 많이 풀더라도 돈이 유통되지 않아 경제 활력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통화승수나 통화유통속도가 떨어지면 경제성장을 위해 더 많은 돈을 투입해야 하는 문제도 생긴다. 한은 관계자는 “통화승수나 통화유통속도는 추세적으로 떨어지고 있는데 코로나19로 하락 속도가 가속화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학자들은 돈이 소비·투자 등 실물경제로 흘러가지 않고 부동산·주식 등 자산 시장에 묶였기 때문에 통화유통속도가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 있는 단기자금을 말하는 M1(협의통화)은 지난해 1,059조 원으로 전년 대비 182조 1,000억 원(20.8%) 증가하면서 2002년(22.5%)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단기자금은 부동산·주식 등 자산 시장으로 쉽게 흘러갈 수 있기 때문에 자산 가격을 올리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돈을 풀면 물가가 오르든지 경제가 성장하든지 해야 하는데 통화유통속도가 떨어지면서 물가와 경제성장이 그대로라는 것은 돈을 푼 효과가 없다는 의미”라며 “정부가 돈을 풀면서도 규제를 완화해 기업의 설비투자로 이어질 수 있는 수로를 뚫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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