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의 고로(용광로) 1기를 오는 2050년까지 탈탄소 설비로 바꾸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6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연간 영업이익을 30여 년간 쏟아부어야 전체 설비(9기)를 개선할 수 있는 셈입니다. 업계는 전 세계적인 ‘탄소 중립’ 추세에 맞춰 설비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전환 비용이 대기업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인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20일 관계 부처와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국내 주요 철강 업체, 한국철강협회 등과 철강 생산 공정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안을 두고 최근 협의를 진행했습니다. 협의 과정에서 민관은 대형 고로 중심의 현행 생산 방식을 전면 개편하는 방안을 중점적으로 다뤘습니다.
포스코 등 국내 대형 철강사는 현재 철광석과 석탄을 고로에 넣어 만든 쇳물로 철강 제품을 생산하는데 주원료로 석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배출이 불가피합니다. 대안으로 제시된 공법은 수소환원제철 기법으로, 이 기법은 석탄 대신 수소와 산소를 고로에 투입해 고온화한 뒤 쇳물을 뽑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비용입니다. 업계는 이번 협의 과정에서 포스코의 고로 1기에서 이뤄지는 공정을 수소환원제철 기법과 재생에너지 전원에 기반한 탄소 중립 제철 공정으로 전환하는 데 5조 9,000억 원이 필요하다는 자체 분석 결과를 정부와 처음 공유했습니다. 해당 비용은 설계 수명이 남은 고로를 폐쇄할 때 발생하는 1조 원가량의 매몰 비용까지 고려한 것입니다. 포스코는 현재 총 9개의 고로를 보유하고 있어 공장 내 모든 설비를 바꾼다면 53조 1,000억 원이 필요합니다. 연간 영업이익(2020년 기준 2조 4,030억 원)의 대부분을 30년간 투입해야 공정 전환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기업이 독자적으로 공정 전환을 추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국내 최대 철강사인 포스코뿐 아니라 현대제철 등 고로를 활용하는 다른 철강 업체 역시 비용을 자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습니다.
철강 업계는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할 수밖에 없는 철강 산업이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탄소 다(多)배출 업종과 협의에 나서며 연구 개발비 지원 확대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과감한 세제 지원책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되레 재정 당국이 탄소 배출량이 많은 기업에 세금이나 부담금을 매기는 안과 기업들에 무상으로 할당되는 배출권 비율을 줄이면서 배출권 유상 할당 비율을 늘리는 방안까지 검토하는 터라 재계의 우려가 높습니다.
유럽에 이어 미국까지 탄소세 도입을 만지작거리는 상황에서 국내 부담까지 커지는 형국입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당국 내부에서도 지원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없지 않지만 대기업을 지원하는 데 대한 부담을 갖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업체의 등을 떠미는 것만으론 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어렵고, 이에 산업부문 탄소 중립 달성 시기도 지연될 수밖에 없습니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포스코(8,148만 톤)와 현대제철(2,224만 톤)이 배출한 탄소 규모는 주요 500대 기업 배출량의 21.5%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합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탄소 배출량을 과감하게 줄이지 않으면 제품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것을 철강 업계도 서서히 실감하고 있다”며 “업계 스스로 변할 수 있는 역량이 안 되는 만큼 부담을 덜어줄 방안이 우선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세종=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