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특혜’ 폐지가 집단면역보다 시급한가?

정부·여당, 백신 접종 위해 힘 모으자면서
2000년 의약분업 성사 위해 의사에게 준
의대정원 감축, 면허취소 사유 축소 ‘선물’
폐기 의료법 개정 추진, 투쟁 자극해서야



“(김대중 정부가 2000년 7월 의사들이 강력 반대하던 의약분업 시행을 위해) 두 가지 선물을 줬습니다. 의대 정원을 3,270여명에서 3,058명으로 줄여줬고, 의료법을 개정해 의사 등 의료인의 면허취소 사유를 ‘모든 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에서 ‘의료법·보건의료 관련 법령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로 제한했습니다. 그래서 살인·성범죄를 저질러 감옥에서 몇 년 살다 나와도 의료인 면허는 살아 있습니다. 이런 특혜는 국민 눈높이에도, (변호사·공인회계사·법무사 등) 다른 직역과의 형평에도 맞지 않습니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난해 11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교통사고를 포함한 모든 범죄에 대해 금고 이상의 형(선고유예 포함)을 선고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의료법 개정안(면허강탈 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것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표명한다.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의결된다면 전국 16개 시도의사회 회장들은 대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전국의사 총파업 등 전면적 투쟁에 나설 것이다.” (16개 시도의사회 회장단, 19일 성명)


"의사면허는 의료법 개정이 아닌 자율징계를 통해 관리 가능한 문제다. 무차별적 징계는 진료현장에서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해 결국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므로 절대 수용할 수 없다. 41대 대한의사협회 회장에 누가 당선되든지 즉각 전면투쟁에 나설 것임을 천명한다.” (의사협회 회장선거 입후보자 6명, 20일 성명)





◇지금은 신속한 백신 접종→ 경제·사회 정상화 매진을


정부·여당의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추진에 반대해 지난해 8월 총파업에 나섰던 의사들이 이번에는 의사 면허취소 사유 확대를 막겠다며 다시 총파업 등 전면투쟁에 나설 태세다.


‘비정상의 정상화’ ‘특혜 폐지’라는 정부·여당의 법 개정 취지에 공감이 간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정부·여당이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라는 사전 정지작업이 부족한 상태에서, 그것도 의사들의 협조가 절실한 시기에 ‘선제공격’에 나선 공통점이 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재유행기였고 이번에는 코로나19 예방접종을 앞두고 있어 시기가 좋지 않아 보인다.


신속한 백신 접종을 통해 우리 경제·사회활동의 정상화가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국민은 오랜 사회적 거리두기로 지쳐있고 자영업자 등은 경제적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정부·여당이 이런 시기에 의사들과의 갈등을 키우는 건 적절치 않다. 이익단체인 의사협회, 회장 선거에 나선 후보들을 강경 투쟁으로 내모는 것은 현 시점에선 득보다 실이 큰 선택인 것 같다.


특혜 폐지도 좋지만 국민들이 코로나19 집단면역을 형성한 내년에 추진해도 큰 문제가 될 건 없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통과시킨 의료법 개정안 대안은 강병원·강선우·권칠승·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4개 법안을 통합·조정한 대안이다. 4개 법안은 의료인 면허취소 사유 범죄행위에 성폭력범죄·특정 강력범죄를 추가하거나 모든 금고 이상의 형으로 확대하고, 취소된 면허 재교부 요건을 강화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기주의 탓만 말고 적절한 정책 타이밍 모색해야


대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개정 법 시행 후 금고 이상의 실형 선고·집행을 유예받은 의사·간호사 등 의료인은 선고유예기간, ‘집행유예기간+2년’ 동안, 형이 집행된 의료인은 집행종료 후 5년 동안 취소된 면허를 재교부받지 못한다. 또 금고 이상의 형으로 2차 면허취소 땐 10년 동안 재교부 금지, ‘1차 면허취소+재교부’에 이어 자격정지 사유 행위 땐 면허취소(현행대로 최장 3년)라는 제재를 받게 된다. 변호사·법무사·공인회계사 등의 면허취소 사유와 같다. 다만 의료행위의 특수성을 고려해 위험한 수술 등을 하다가 환자가 상해를 입거나 사망해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 의료인은 면허취소 대상에서 제외된다.


의료법 개정을 둘러싼 갈등이 어떻게 결론날지는 속단할 수 없다. 우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선택이 정부·여당, 더 나가 청와대의 선택인지 지켜봐야 한다. 과연, 의사들과의 갈등이 고조되는 것을 무릅쓰고 의료법 개정안의 신속한 국회 처리를 백신 접종보다 최우선 순위에 놓을까?


그런 측면에서 정세균 국무총리가 "교통사고만 내도 의사면허가 무조건 취소되는 것처럼 사실을 호도해 개탄을 금할 수 없다. 특정 직역의 이익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할 수 없다. 만약 이를 빌미로 불법적인 집단행동이 현실화하면 정부는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며 강경 발언을 한 것은 지난해 파업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지난해에도 처음엔 강경 발언을 했지만 의사들과 예비의사들에게 끌려다녔다.


정 총리는 “성공적인 백신 접종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지금은 정부·여당이 평지풍파를 일으키며 의사들을 이기주의 집단으로 몰 때가 아니다. 현재로선 의사협회의 강경투쟁에 일반 의사들과 예비의사까지 ‘밥그릇 지키기’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동참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신속하고 원만한 백신 접종이 우리 경제·사회의 정상화를 위한 최우선 순위인 것 만큼은 확실하다. 정부·여당도 이를 위해 정책의 우선순위와 완급을 조절하길 바란다.


/임웅재 기자 jaelim@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