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6일 울산 달동문화공원에서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필자가 울산광역시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제안한 ‘울산 항일독립운동기념탑’이 준공된 것이다. ‘울산’ 하면 대체로 떠올리는 키워드가 자동차·조선·석유화학 등이지만 울산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항일 호국 도시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일제강점기 항일 단체였던 ‘대한광복회’ 총사령으로 무장 투쟁에 앞장섰던 박상진 의사가 있다. 그는 “오랑캐의 악정 폭행은 날로 더해가고 날로 거듭해간다. 이를 생각할 때는 피눈물이 샘솟아 조국을 회복하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며 불굴의 정신으로 이 땅을 지켜냈다. 박 의사 외에도 일본으로 건너가 일왕 암살을 시도하다 적발돼 고문 후유증으로 순직한 서진문 선생, 서울과 울산을 오가며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옥고를 치른 이효정 선생도 있다. ‘한글이 목숨’이라며 우리 말과 글을 지켜온 외솔 최현배 선생도 울산 출신이다. 울산을 배경으로 독립운동을 한 분이 96명에 달하니 가히 울산도 독립운동의 요람이라 할 만하지 않을까 싶다.
어제는 102주년을 맞은 3·1절이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10년이 10번 거듭될 동안 일본의 정직한 성찰과 진심 어린 반성은 없었다. 오히려 억지와 궤변만 늘었다. 그런 일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떨까.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IMF 외환위기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대한 독립 만세’의 함성과 기세는 문재인 정부 들어 오히려 작아지고 초라해진 감이 있다.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따른 우리 법원의 배상 판결에 대해 “곤혹스럽다”고 했고 외교부는 피해자를 매춘부라고 규정한 하버드대 교수에 대해 아무 입장이 없다. 반일 감정이 국내 정치에 써먹는 선거용 소비재 중 하나로 활용될 뿐 대일 외교에서 아무 소득을 얻지 못하고 있다. 국제 외교 무대에서는 우리 위상을 오히려 쪼그라들게 하고 일본의 위상만 키웠다. 외교적 무능 탓이다.
정부가 이처럼 갈팡질팡하는 사이 사람들은 3·1절을 조기 게양의 날로 알거나 안중근 의사와 유관순 열사를 ‘민족 대표 33인’이라 말하기도 한다. 독립선언의 발원지인 종로 태화관을 파고다 공원으로 잘못 알고 있는 이도 부지기수다. 하물며 울산의 독립운동가인 박상진 의사나 최현배 선생에 대한 기억은 오죽할까.
역사는 자기 성찰의 거울이자 미래를 여는 열쇠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백 년이 아니라 천 년의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그 사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변할 뿐이다. 높이 솟은 울산의 항일독립운동기념탑을 바라보며 선열의 치열한 애국정신과 굳센 마음가짐을 다시금 새겨본다.
/김혜린 기자 r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