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김민희와 함께 집 근처를 산책하다가 어린 달팽이를 발견했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작은 선물로 이 달팽이를 보여 주고 싶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3번째 수상을 하게 된 홍상수 감독의 수상 소감은 남달랐다. 코로나 19 탓에 시상식장을 직접 찾지 못한 수상자들이 모두 영상을 통해 소감을 전한 가운데 홍 감독은 다른 수상자들처럼 환희에 찬 얼굴을 보여주는 대신 텍스트와 달팽이 영상을 공개했다.
그는 올해 영화제에서 ‘인트로덕션’으로 은곰상(각본상)의 주인이 된 데 대해 얼굴 대신 텍스트와 목소리로 “한국에서 인사를 전한다. 수상 소식을 듣고는 놀랐고 행복했다”며 심사 위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수상 소감을 모두 읽은 후에는 김민희가 직접 부른 도리스 데이의 ‘케 세라세라’를 배경 음악 삼아 천천히 움직이는 달팽이 영상을 공개했다.
영화계에서 홍 감독은 베를린 영화제가 ‘사랑하는’ 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홍 감독은 그 동안 '밤과 낮'(2008),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3),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 '도망친 여자'(2020), 인트로덕션(2021)' 등 5번이나 경쟁 부문에 초청 받았다. 이중 ‘밤의 해변에서 혼자’가 은곰상 여우주연상, ‘도망친 여자’가 은곰상 감독상을 받았고, 올해 ‘인트로덕션’이 은곰상 각본상 부문에 호명됐다. 3번이나 베를린 영화제의 최종 선택을 받은 것이다.
올해 상반기 국내 개봉 예정인 ‘인트로덕션’은 한 청년이 아버지, 연인, 어머니를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세 단락에 걸쳐 풀어가는 작품이다. 신석호, 김영호, 김민희, 박미소, 서영화 등이 출연했다. 작품이 공개된 직후 영화계에서 호평이 쏟아졌으며, 베를린 영화제 심사위원들은 수상작 선정 이유로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내래이션을 효율적으로 풀어나가는 것 이상으로 행동과 행동 사이의 순간적인 간격을 직조하는데, 그런 가운데 인간 삶 속에 숨겨진 진실이 갑자기 밝고 명쾌하게 드러난다”고 평했다.
한편 최고상인 황금곰상은 루마니아 감독 라두 주드의 '배드 럭 뱅잉 오어 루니 폰(Bad Luck Banging or Loony Porn)'에게 돌아갔다. 심사위원대상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휠 오브 포츈 앤드 판타지(Wheel of Fortune and Fantasy)’, 감독상은 헝가리 출신의 데네스 나지 감독의 '내추럴 라이트(Natural Light)'가 각각 받았다.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