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법복을 벗고 정치인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정치권은 요동치고 있습니다. 뚜렷한 대권주자가 없었던 국민의힘은 대놓고 ‘러브콜’을 보내고 있고, 제3지대를 기반으로 외연확장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윤 전 총장 부친이 충남 공주와 논산에 살았고 공주농고를 나온 인연으로 ‘충청대망론’까지 다시 등장하는 걸 보면 윤 전 총장은 차기 대선의 변수가 아닌 상수가 분명해 보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을 이끈 최순실 특검의 4팀장으로 활약하고, 현 정부 출범 이후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적폐청산 수사를 지휘한데다 ‘서열 파괴’로 검찰총장까지 안착한 윤 전 총장이 현 정권과 맞서는 야권 대선후보로 부상한 현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별의 순간’을 거머쥘 수 있을까요.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윤 전 총장이 일약 대선주자 반열에 오른데는 아시다시피 추 전 장관의 역할이 컸습니다. 이른바 ‘추-윤’갈등 속에 윤 전 총장은 마치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려다 권력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힌 ‘순교자’로 떠올랐습니다.
앞서 조국 전 법무장관에 대한 수사도 윤 전 총장을 야권인사로 분류하는 단초가 됐지만 지지율을 비교해보면 추-윤 갈등 이후 윤 전 총장은 ‘별의 순간’에 가까워졌습니다. 2019년 하반기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사태를 겪는 뒤 2020년 1월 한 언론사가 처음 윤 전 총장을 대선 여론조사에 포함시킨 결과 윤 전 총장은 10.8%를 기록했습니다. 이후 추-윤갈등 속에 등락을 반복하다가 추-윤갈등의 절정기였던 올해초에는 30%를 넘기며 1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윤 전 총장 지지율은 추 전 장관의 사퇴 이후 정체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결국 추 전 장관과의 갈등이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을 추동했던 셈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윤 전 총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시킨 핵심 수사팀 수장입니다. 이런 까닭에 그가 보수정치세력에게 지지를 받아야 ‘별의 순간’을 붙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 정치 지형상 보수정치는 기본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의 딸 박근혜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구축돼 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한 윤 전 총장이 보수세력에게 ‘우리편’으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박 전 대통령과의 ‘구원’을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윤 전 총장이 사퇴 전날 박 전대통령의 정치적 터전인 대구를 방문한 점도 이런 점에서 우연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윤 전 총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로부터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요. 해답은 놀랍게도 추 전 장관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판사 출신인 추 전 장관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대구·경북(TK)출신인 추 대표를 DJ는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 며느리를 얻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그는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면서 혹독한 시련을 겪습니다.
탄핵 역풍은 거셌습니다. 삼보일배 등으로 여론을 돌리려 했지만 추 전 장관 조차 17대 총선에서 낙선하고 맙니다. 그랬던 그가 대표적인 ‘친문’정치인으로 돌아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에 이어 법무부장관까지 올랐으니 이 역시 아이러니입니다. 추 전 장관은 어떻게 ‘친노·친문’으로부터 용서를 받았을까요. 당시엔 삼보일배 효과가 없었지만 삼보일배로 후유증을 얻어 다리에 천을 묶지 않으면 허리를 펼 수 없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지난 2019년 법무장관 인사청문회 당시에도 그런 모습이 포착된 바 있습니다.
2012년에는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의 ‘국민통합위원장’을 맡으며 ‘친노’와 화해를 시작했습니다. 아울러 2016년 호남 정치인을 중심으로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를 흔들때 그는 문재인 옆을 지켰습니다. 당시 국민의당으로 탈당한 주승용 최고위원은 문재인 당 대표 면전에서 “대표직을 사퇴하라”고 최고위원직을 사퇴까지 하며 당의 내홍이 극심했지만 그는 탈당 행렬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치러진 민주당 당대표 선거에서 그는 총 득표율 54.03%의 과반을 거뜬히 확보합니다. 노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걸어왔던 사죄의 길이 친노와 친문 지지자들에게 인정받은 것으로도 볼수 있지 않을까요.
이제 윤 전 총장의 시간입니다. 그가 보수세력을 품기 위해 또는 보수세력이 그를 품기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옛 과거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것입니다. 물론 국민의힘 보다는 제3지대를 통한 외연확장에 우선 나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윤 전 총장은 적폐 청산 수사를 지휘했다. 윤 전 총장의 개인 정체성과도 관련돼 있기에 국민의힘 입당은 어려워 보인다. 윤 전 총장은 제3지대를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제3지대를 통해 여야 지지층을 흡수하고 중도층을 통해 외연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사이 윤 전 총장은 대중강연과 저서 발간이나 방송출연 등으로 정치인 행보를 본격화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추 전 장관과 같은 ‘구원’ 해소에 나설 것입니다. 중도층만 겨냥한 외연확장에 머물러 있기엔 한계가 명확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광주에 내려가 삼보일배를 했던 추 전 장관 처럼 윤 전 총장도 대구에 가서 삼보일배를 하지 않으리란 법도 없습니다. 명실상부한 반문(反文)진영의 상징으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윤 전 총장은 ‘친박’과의 화해가 필요한 순간에 직면할 겁니다.
이미 제1야당 국민의힘은 윤 전 총장에 한결같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때 윤 전 총장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현재로서는 여권과 각을 세우고 나왔으니까, 본인이 결국 어떻게 결심할지는 모르지만 야인이 된 건 사실”이라고 했고, 주호영 원내대표 역시 “필요하면 윤 총장과 힘을 합쳐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앞으로도 굽힘없이 대한민국을 위해 같이 노력해주길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현 집권세력과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 된 윤 전 총장이 앞으로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까지 흡수할지 지켜볼 일입니다. ‘극과 극’은 통한다 했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