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노동자들이 고시원에서 숨진 채 발견된 쿠팡 택배 노동자 이모(48)씨의 사망 원인은 과로가 명백하다며 쿠팡 측에 사과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는 8일 오후 2시께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쿠팡의 살인적인 새벽 배송 근무 체계가 택배 노동자를 또다시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쿠팡은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책위와 경찰에 따르면 ‘쿠팡맨’으로 일하며 심야·새벽배송을 맡았던 이모(48)씨는 지난 6일 낮 12시 23분께 송파구의 한 고시원에서 숨진 채 경찰에 발견됐다. 경찰은 이씨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배우자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해 이씨의 시신을 찾았다. 경찰은 현장에서 유서를 발견하지 못했다. 타살 정황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진경호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부검의의 1차 소견에 따르면 고인에게서 뇌출혈이 발견됐고 심장 혈관이 많이 부어오른 상태였다”며 “이는 뇌혈관질환에 의한 사망으로 과로사의 대표적 유형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진 위원장은 “유족에 따르면 만 48세인 고인은 특별한 지병 없이 혈압약만 먹어왔다”고 덧붙였다.
대책위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해 초 쿠팡에 계약직으로 입사해 오후 9시부터 오전 7시까지 주 5일 근무했다. 대책위는 “이씨 동료 증언에 의하면 쿠팡은 이씨 근무시간에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물량을 모두 처리하도록 강요하며 1시간인 무급 휴게시간마저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을 하게 했다”고 전했다.
대책위는 이날 회견에서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택배 기사들이 연달아 과로사로 세상을 떠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진영 공공운수노조 쿠팡노조 지부장은 “쿠팡에서 배송을 담당하는 쿠팡맨의 90% 가량이 비정규직인데 회사는 상대평가를 통해 정규직 전환과 계약 연장, 승진을 결정한다”며 “이런 근무 환경 하에서는 휴게시간에도 택배 노동자들이 무리해 일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책위 관계자는 “1년 사이 6명의 쿠팡 근로자가 숨졌다”며 “이는 명백히 열악한 근무환경에 의한 결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책위는 ‘택배노동자 과로사 재발 방지’를 위해 정부가 나서 쿠팡을 중대재해사업장으로 지정하고 특별 근로감독을 실시할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정부, 국회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진상조사위를 구성해 쿠팡 노동환경에 대한 진상조사를 시행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쿠팡 측은 공식적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해야 한다고 대책위는 주장했다.
한편 쿠팡은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고인에 대한 애도와 위로를 표한다”며 입장문을 발표했다. 입장문에서 쿠팡은 “고인은 2월 24일을 마지막으로 출근하지 않았고, 사망 당시엔 휴가 중이었다”며 “고인의 지난 12주 간 근무일수는 주당 4일 정도였고 근무시간은 평균 40시간이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책위 측은 “쿠팡 측이 말하는 노동 시간은 사실상 근로 행위가 이루어졌던 휴게시간이 포함되지 않은 수치”라며 “야간 노동임을 감안할 때 주당 40시간은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라고 반박했다.
/이덕연 기자 gravity@sedaily.com, 심기문 기자 doo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