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休-제천 측백나무 숲] 느림의 숲,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봄의 소리' 들리네

60년 이상 자란 측백나무 4,500그루 빽빽
산 따라 물 따라 발길 닿는대로 나만의 시간
정상에 서면 청풍호·옥순봉 한눈에 펼쳐져
인적 드문 '비대면 여행지'서 여유로움 만끽

두무산 측백나무 숲이 청풍호에서 피어오른 물안개로 뒤덮혀 있다./사진 제공=수산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여행의 의미가 달라졌다. 짧은 시간에 여러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눈으로 보고 즐기는 ‘바쁜 여행’ 대신 한적한 시골 마을에 머무르며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이른바 ‘느린 여행’으로 말이다.



제천 수산면 측백나무 숲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수산리의 전경. 청풍호와 옥순봉·금수산으로 둘러싸인 수산면은 인구 2,100여 명이 살고 있는 국내 대표 ‘슬로시티’다.

충북 제천 수산면은 이처럼 여유로운 여행을 즐기기에 제격인 곳이다. 수산(水山)이라는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람 대신 물과 산으로 가득한 농촌으로 들어서면 시간마저 천천히 흐르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본격적인 꽃놀이 철을 앞두고 인적이 드문 비대면 여행지로 제천을 찾았다. 지난 1월 개통한 KTX 이음(EUM260)을 이용하면 서울 청량리역에서 제천역까지 1시간 1분이면 갈 수 있다. 무궁화호로 1시간 41분이나 걸리던 거리가 40분이나 단축됐다.



총 길이 600m인 측백나무 숲길은 낙엽이 겹겹이 쌓인 푹신한 흙길이다. 지그재그로 난 숲길은 두무산 중턱까지 이어진다.

수산면은 2012년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자연 속에서 지역공동체와 조화를 이루며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이 운동의 핵심인데 그 취지에 따라 만들어진 곳이 바로 측백나무 숲길이다. 수령 60년 이상의 측백나무 4,500여 그루가 자생하는 국내 최대 측백나무 군락지에 제천시가 2014년 조성한 산책로다.



측백나무 숲길은 지그재그로 난 완만한 구간이라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측백나무 숲은 두무산(해발 477m)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측백나무가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산 중턱을 중심으로 등산로와 연결되는 숲길이 펼쳐진다. 측백전시체험장을 지나 숲길 입구에는 가지만 앙상한 노간주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 눈길을 끈다. 측백나무 군락지에 다른 수종이 들어와 있다고 해 ‘건방진 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사실 노간주나무도 측백나무과에 속하는 여러 나무 중 하나다.



측백나무는 피톤치드가 풍부한 편백나무와 같은 수종으로 집중력 향상과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숲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은은한 측백나무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측백나무는 무덤 속 시신에 생기는 벌레를 쫓아낸다고 해 예로부터 왕의 무덤 옆에 심을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숲 안으로 들어서면 경사를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완만한 지그재그 구간이 이어진다. 낙엽이 층층이 쌓인 푹신한 흙길과 측백나무로 가득한 주변 풍경은 걷는 내내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숲길 중간중간에는 방문객들이 천천히 걸으며 삼림욕을 즐길 수 있도록 의자가 놓여 있다. 측백나무 숲길은 천천히 걷으며 사색하기 위해 찾는 곳이다.

땀 흘려가며 서둘러 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걷는 것이 목적인 곳이다. 길 중간중간 쉬어갈 수 있는 간이 의자가 놓여 있는 것도 서두르지 말고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으라는 의미에서다. 숲길 안 구간들은 ‘명상하기 좋은 곳’이나 ‘측백 열매 관찰하기 좋은 곳’ 등으로 구분돼 있어 방문객들이 온전히 숲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운이 좋으면 측백나무 숲에 서식하는 천연기념물 새매와 약초·버섯 등 각종 동식물도 만나볼 수 있다.



측백나무 숲 정상에서는 제천과 단양을 잇는 36번 국도가 내려다 보인다.

종점은 두무산 중턱 명상 쉼터다. 쉼터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오는데 측백나무 숲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고 멀리 수산리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숲길은 총 600m 코스. 천천히 걸어도 40분이면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가족을 동반한 방문객이라면 입구 체험장부터 생태지도사와 동행해 생태 해설과 전통 활쏘기 체험 등 각종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보는 것도 좋다. 숲 보호 차원에서 단체 입장객은 하루 80명으로 제한된다.



두무산 등산로에서 만나볼 수 있는 호랑이굴(왼쪽 사진)과 토정 이지함 선생이 수학하던 터.

숲길에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다시 40분 정도만 더 올라가면 두무산 정상이다. 여기부터는 ‘자드락길 6코스 괴곡성벽길’이 연결된다. 난도가 꽤 높은 경사로를 쉼 없이 올라야 하지만 성인이라면 충분히 걸을 만한 길이다. 정상 두무산 전망대에서는 옥순봉을 비롯해 청풍호의 수려한 풍광이 펼쳐진다. 두무산 전망대는 집안에서 이름난 화가가 배출된다는 화필봉(畵筆峰)이 보이는 곳으로도 유명한데 월전 장우성 화백의 할머니 묘가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장우성 화백은 현충사에 모셔진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그린 인물이다.



두무산은 천연기념물인 새매 등 다양한 동식물이 살고 있다. 사진은 농장에서 탈출해 야생화된 흑염소.

정상에서는 길이 일몰(헬기장)과 다불암, 백봉산마루주막으로 나뉜다. 가장 빨리 하산하는 길은 다불암 방향이다. 10여 분만 내려가면 암자 옆 도로와 연결되지만 절이 있는 다불리에서 수산리까지는 임도로 30분 이상을 걸어야 한다. 원점 회귀하려면 온 길을 그대로 내려가는 게 좋다. 헬기장 방면으로 측백나무 숲길과 연결되는 또 다른 하산길이 있지만 중간에 갈림길이 많은데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아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백봉산마루주막으로 향하면 청풍호 전망대까지 갈 수 있다. 전망대와 10분 거리인 백봉산마루주막은 괴곡성벽길 등산객들이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빠지지 않고 들러가는 곳이다.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괴곡성벽길 중간에 자리한 백봉산마루주막. 메뉴는 두부와 막걸리·배추전이 전부다.

수산면에서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카약·카누체험장은 배를 타고 청풍호 일대를 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옥순대교 남단에서 출발해 가이드를 따라 옥순봉·촛대바위 등을 돌아 옥순대교까지 다녀오는 단거리 코스다. 쉬엄쉬엄 노를 저으며 청풍호와 주변 산세를 감상하기에 제격이다. 생각보다 힘이 들지 않고 노 젓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 부모님 동반하에 어린아이들도 체험해볼 수 있다.



제천한방엑스포공원 내 전시관에서는 4D영상관 및 가상현실(VR)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제천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의림지와 제천한방엑스포공원, 청풍호 주변으로 조성된 청풍호반케이블카, 청풍문화재단지까지 발길을 뻗을 수 있다. 특히 2019년 문을 연 제천한방엑스포공원은 치유와 휴식을 주제로 한 웰니스 관광지로 홉테라피 체험, 4D영상관 및 가상현실(VR) 체험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가족 단위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글·사진(제천)=최성욱 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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