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위인 일본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가계 지출과 기업 투자가 모두 부진해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나올 만큼 빠른 경기 회복세의 미국, 경기 부양의 강도를 낮추면서까지 6% 이상의 안정적 성장을 공언한 중국과는 사정이 딴판이다. 특히 일본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자 수는 4만 6,000여 명(5일 기준)으로 한국(29만 6,000여 명)에도 크게 못 미친다. 도쿄 올림픽 특수를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경기 회복도 더딜 수밖에 없어 올해 말까지 침체가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9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이날 일본 총무성은 지난 1월 2인 이상 가구의 실질 기준 소비지출이 26만 7,760엔(279만 8,761원)으로 전년 대비 6.1% 감소했다고 밝혔다.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 2.2%에 비교하면 4%포인트 가까이 줄었다.
전월 대비로는 7.3%포인트 감소했다. 평균 소비성향도 77.5%로 전년 대비 1.4%포인트 낮아졌다. 코로나19 재유행으로 도쿄도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 긴급사태가 재선언되면서 지출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기업 투자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내각부는 이날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 대비 2.8% 늘었다고 발표했다. 기업 투자 관련 수치가 뒤늦게 반영되면서 2월 발표한 속보치 3%에서 하향 조정됐다. 기업 설비투자는 4.5% 증가에서 4.3% 증가로 조정됐다. 지표로만 보면 -8.3%를 기록했던 지난해 2분기 이후 경제가 완만하게 회복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해 여행 지원 사업인 ‘고 투 트래블’을 본격화하면서 소비가 일시 증가해 지난해 3분기에 이어 2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11월부터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면서 성장세는 꺾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GDP 성장률은 전월 대비 2.6% 증가하며 6월(7%) 이후 최고 수준을 보였지만 11월 0.4%, 12월 -0.4%를 기록했다. 개인 소비와 함께 일본 경제의 회복을 주도하던 수출도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으로 11월과 12월 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일본 정부 내에서도 경기 둔화를 우려하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재생담당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마이너스(성장)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밝혔다. 2월 GDP 속보치가 나온 날 “경제는 여전히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밑돌고 있고 회복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던 것보다 더 암울한 톤이다.
닛케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올해 긴급사태가 재선언됐고 수출 감소의 여파도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올 1분기 일본 경제가 다시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사히신문도 올 1분기는 코로나19 재확산으로 2차 긴급사태가 선언됐고 개인 소비 등이 줄면서 3분기 만에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고 전했다.
시장에서는 올 2분기부터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면서 경제가 회복세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현 앞바다에서 발생한 지진이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어 낙관론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많다.
이미 규모 7.3의 강력한 지진이 후쿠시마현과 미야기현 등 도호쿠 지방을 강타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와 맞먹는 여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코로나19도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전날 기준 엿새 만에 신규 확진자가 1,000명 아래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재유행 가능성이 있는데다 백신 공급도 너무 더디다는 평가다. 기우치 다카히데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닛케이에 “백신 접종으로 소비가 늘어나는 시기는 일러야 올해 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성규 기자 exculpate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