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한 작가의 개인전이 같은 시기, 뉴욕의 서로 다른 두 곳에서 열렸다. 하나는 유태계 창업주가 거물급 컬렉터들을 대거 확보한 상업화랑 ‘홀리 솔로몬(Holly Solomon Gallery)’, 또 한 곳은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대안공간인 ‘더 키친(The Kitchen)’이었다. 젊은 작가는 각각의 초대장 용도로 2장의 자화상을 만들었다. 하나는 정갈한 줄무늬 셔츠에 까르띠에 시계를 찬, 또 하나는 검은 가죽장갑을 끼고 육중한 금속 팔찌를 낀 손으로, 두 사진 속 손은 같은 서체로 ‘그림(Pictures)’이라는 글씨를 쓰고 있다. 유명 인사들의 초상사진 전시와 사도마조히즘적(가학적이고 피학적인) 성애(性愛)와 노골적 성기 사진이 포함된 일명 ‘엑스(X)포트폴리오’라는 두 상반된 전시임을 작가의 손으로 드러내되, 둘 다 ‘같은’ 예술을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진이다.
1977년 2월 뉴욕에서 열린 두 전시는 미국의 현대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1946~1989)의 첫 번째 성공 이력으로 기록됐다. 양면성과 논쟁거리를 즐기는 작가의 특성은 이처럼 시작부터 분명했다. 44년 전 자화상인 두 손목 사진이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 K2의 1·2층 전시장에 각각 걸렸다. 메이플소프의 국내 첫 개인전이자 국제갤러리 부산점까지 동시에 열려 약 100점의 유작을 선보이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전시 초입에서 만나는 이 손목 사진이 메이플소프의 작품을 읽는 중요한 열쇳말이다. 바로 이중성과 양면성. 생전의 작가는 “아름다움과 악마성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프랭크 다이즈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은 단련한 몸의 근육이 마치 미켈란젤로가 조각으로 빚었을 법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지만, 가죽 장갑을 낀 양손에 든 물건이 악마의 뿔을 상상하게 만드는 반전을 품고 있다. 가시관을 쓴 남성이 두 팔을 벌린 채 다리를 모으고 선 자세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연상시키는 구도지만 그가 흑인이며 축 늘어진 성기를 노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성 모독’이라는 비난을 받을 법도 하다. “성적 표현의 수위가 높은 작품이 일부 포함됐으니 전시 관람에 참고”하라는 경고문이 붙은 2층 전시작은 수위가 높다. 발기한 남성 성기를 권총과 평행 구도로 포착하거나 식재료처럼 묘사하기도 했고, 굵은 쇠사슬에 거꾸로 매달린 남성, 비밀스러운 변태적 성애 장면도 담겨 있다. 마치 악마의 꼬리처럼 항문에 채찍을 꽂고 관객을 희롱하듯 응사하는 자화상도 걸렸다. 미국에서는 메이플소프의 작품 전시를 두고 외설적이라는 혐의를 씌워 법정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시를 기획한 이용우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교수는 “메이플소프는 성(聖)과 속(俗), 예술과 외설의 경계를 넘나들며 논쟁을 일으켰다”면서 “그러나 치밀하게 계산된 채광과 완벽한 구도 등으로 ‘극한의 미학’이라는 찬사를 받은 작가”라고 평했다. 이 교수는 “남성 누드나 퀴어미학 등을 구현한 몇몇 작가가 있지만 피사체로서 사회문화적, 학술적 담론까지 끌어낸 작가는 메이플소프가 독보적”이라며 “2,000여 유작 중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을 선별했기에 SNS 속 이미지에 익숙한 현대인들이 이 전설적 이미지를 어떻게 읽어낼 지가 의미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28일까지.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