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 초저금리로 지난해 가계·기업·정부 빚이 400조 원 가까이 폭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최근 시중금리 상승이 추세인지, 일시적인 것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면서 금리 상승이 본격화할 경우 3대 경제주체들이 ‘트리플 충격’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자 상환 부담이 늘면서 가계 부실과 한계 기업의 퇴출, 정부의 재정 집행 여력 고갈 등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9일 한국은행·국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 가계 부채 잔액은 1,726조 원으로 1년 새 125조 7,986억 원 늘었다. 기업 부채도 자금에 여유가 있는 대기업을 제외한 중소기업만 놓고 봤을 때 1,083조 7,768억 원으로 1년 새 147조 8,021억 원 불었다. 국가 채무 역시 지난 2019년 723조 2,000억 원에서 지난해 846조 9,000억 원으로 1년 새 123조 7,000억 원 증가했다. 합하면 3대 경제주체가 코로나 국면을 지나며 397조 3,007억 원의 빚을 냈다.
이 중 가장 심각한 것은 가정 경제다. 가계대출 중 70%가량이 변동금리다. 1월 현재 예금은행 가계대출 중 변동금리 비중은 69.7%에 달했다. 2018년 12월 이후 2년 1개월 만에 최고치다. 예금은행 가계대출 잔액이 지난해 12월 849조 8,694억 원인 점을 감안하면 이 중 약 70%인 594조 9,086억 원이 변동금리 대출이다. 만약 시중 금리가 1%포인트만 올라도 가계의 연 이자 부담은 6조 원(5조 9,491억원) 가까이 늘어난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이는 예금은행 가계부채에 대한 수치로 카드사·캐피털 등 제2금융권 대출까지 포함하면 금리 상승으로 늘어나는 가계의 이자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계 자본시장이 연결돼 있기 때문에 미국 국채 금리 상승은 결국 우리의 금리 인상 시기를 앞당길 것”이라며 “빚을 내 자산시장에 투자하는 사람이 많아진 상황에서 가계 부채 부실로 연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눈을 돌려 기업 부문을 보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좀비 기업’이 빠르게 늘고 있다. 한은의 지난해 9월 ‘금융 안정 상황’을 보면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한계 기업은 2019년 3,475개(전체 기업 대비 14.8%)로 2010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한은은 지난해에는 한계 기업이 5,033개(21.4%)로 크게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코로나 대책으로 중소기업에 원리금 상환을 유예해줘 한계 기업이 더 늘어났다”며 “금리 상승에 의한 악영향이 한꺼번에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오는 9월 말 원리금 상환 유예 정책을 끝낸 후 그동안 밀린 원리금의 분할 상환을 유도하겠다고 하지만, 그동안 누적된 원리금 비용에 금리까지 올라간 상태에서 빚을 상환할 수 없는 기업이 많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전무도 “외환위기 이후 제대로된 기업 구조 조정이 없었기 때문에 한계 기업이 누적돼왔다”며 “금리 상승이 계속될지 지켜봐야겠지만 현실화하면 기업 부실이 확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라 곳간 역시 금리 상승을 강 건너 불구경할 입장은 아니다. 저금리 때야 나랏빚이 늘어도 이자 비용이 많이 늘지 않지만 금리 상승과 맞물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실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올해 예산안 검토 보고서를 보면 국가 채무 이자는 그동안 나랏빚이 늘어도 2019년 18조 원까지 하락했지만 지난해 20조 9,000억 원으로 늘었고 올해도 22조 7,000억 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두원 연세대 상경대학장은 “이제까지 정부가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저금리 덕분”이라며 “금리가 오르면서 재정 운영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매년 고정적으로 이자 비용이 나가다 보니 재정 여력도 줄어들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학장은 “저금리에 가려졌던 취약 계층, 영세 자영업자의 문제도 수면 위로 드러날 것”이라며 “언제까지 재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민간에 의한 경기 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태규 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