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부산서도 지분쪼개기·알박기…"개발정보란 정보 다 샜나"

■ 본지, 택지지구 255필지 등본 분석…전국토가 투기장으로
논밭 엎고 묘목, 조립식 '벌집' 수두룩…광명·시흥 판박이
세종 스마트 산단 인근 야산 소유주는 766명 달하기도
"대토보상 노린 투기…믿을만한 제3 기관 전수조사 시급"

11일 광명시청 소속 6급 공무원 A 씨가 보유한 광명·시흥 신도시 내 토지. 형질변경으로 숲이 훼손돼 있다. /연합뉴스


# 지난 2019년 5월 택지 지구로 지정된 경기도 안산 장상지구, 서울경제가 등기부등본을 분석한 결과 경남 진주시와 경북 구미시에서 온 외지인 2명이 지구 지정 한 달 전인 4월에 지구 내 토지를 매입했다. 매입가는 7억 500만 원으로 기록돼 있다. 이들은 지분을 절반씩 나눴다. 지구 지정 한 달 전에 외지인 2명이, 그것도 지분을 절반씩 나눠 매입한 것이다. 현지 중개업소 관계자는 “정보가 어떻게 유출됐는지 모르겠지만 토지 매입 후 한 달 뒤 지구 지정이 됐다”며 “지목은 ‘답(논)’인데 이들이 농사를 지을 목적은 아닌 것 같다. 대토 보상을 노린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경제가 현 정부 들어 지정된 수도권 택지 지구 18곳을 대상으로 255개의 등기부등본을 분석한 결과 투기로 의심되는 거래가 수두룩했다. 수도권 토지를 서울·지방 등 외지인이 거액의 돈을 주고 매입한 뒤 10명이 지분을 나눈 사례도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세종·대구·광주 등 전국의 개발 예정 지역 내에서 투기로 의심되는 행위가 포착되고 있다. 정부는 11일 1차 합동조사에서 20명의 투기 의심자를 확인했고 주로 광명·시흥 신도시에 집중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정부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정부가 개발만 잔뜩 발표해놓고 제대로 된 관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뢰할 만한 제 3의 기관에 의한 전(全) 공공 택지 조사, 국회의원 등 관련인을 조사해달라는 국민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다른 택지서도 정보 유출?…곳곳서 보인 ‘광명·시흥’ 데자뷔=택지 조성 지역 255개 필지의 등기부등본을 분석해봤다. 조사는 지구 지정 2년 전 거래 위주로 이뤄졌다. 결론은 이들 곳곳에서 사전 정보 유출이 의심되는 수상한 거래가 다수 나왔다.


한 예로 2017년 8월 경기도 광명시 ‘광명학온지구’ 내 2,820㎡ 규모의 밭이 팔렸다. 총 6명이 매수했는데 이들의 거주지를 보면 수상스럽다. 서울 송파구부터 성남 분당, 안산, 광명 등 다양했다. 연령대 또한 1953년생부터 1982년생까지 범위가 넓었다. 개발 정보를 듣고 공동으로 매입한 흔적으로 추정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의정부 우정, 구리 갈매역세권, 군포 대야미 등 수많은 공공 택지 지구에서 적게는 2~3명, 많게는 10여 명까지 한 번에 토지를 매수한 뒤 지분을 나누는 거래가 다수 발생했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의 ‘지분 쪼개기’ 거래가 발견됐다. 한 토지 투자 업계 관계자는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토지를 매수한 뒤 지분을 나누는 건 분명 일상적이지는 않은 일”이라며 “투기 정황이 의심된다”고 설명했다.


지구 지정 직전 외지인이 토지를 매수한 사례도 있다. 2017년 11월 문재인 정부의 주거복지로드맵에 따라 신혼희망타운 등 공공 주택 지구로 지정된 의왕 월암지구에서 해당 지구가 발표되기 한두 달 전 서울·천안 등에서 온 외지인이 8억 3,000만 원, 8억 6,000만 원에 토지를 매수하기도 했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꼭 인근에 거주해야만 해당 지역 땅을 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급작스럽게 외지인이 큰돈을 들여 토지를 매입하는 건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들 토지를 매입한 소유주들은 논밭을 갈아엎고 소나무 등 묘목을 심기도 했다. 기자가 찾은 한 토지에는 밭인데 나무만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광명·시흥 투기수법은 보편적이었던 셈이다.




세종국가산업단지 예정 부지로 알려진 세종시 연서면 와촌리 일대에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조립식 주택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연합뉴스

◇조립식 주택도 짓고, 전 국토가 투기장=이뿐만이 아니다. 지방에서도 투기로 의심되는 행위가 계속 나오고 있다. 충북도는 청주 넥스트폴리스 산업단지와 음성 맹동·인곡 산업단지, 오송 3생명과학 국가산업단지와 관련해 공직자들의 투기가 있었는지 조사하고 있다. 속칭 ‘벌집(투기 목적의 조립식 주택)’이 들어서고 관리되지 않은 채 묘목들만 즐비한 밭이 생겨나 투기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광주시 산정지구에서도 논을 갈아엎고 묘목을 심은 사례가 다수 포착됐다.


세종시 스마트 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인 세종시 연서면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사업 확정일을 앞두고 ‘벌집 주택’이라 일컬어지는 조립식 건물이 수십 채 들어섰다. 산업단지 인근 야산에서도 소유주만 766명에 달하는 등 지분 쪼개기 식 투기가 극심했다. 부산시도 강서구 대저동 연구개발특구 일대 투기 의혹에 대한 조사에 나선다. 이곳 역시 주택 공급 계획을 발표하기 전 토지 거래량이 급증하는 이상 징후를 보인 곳이다.


부산 대저지구에서도 투기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택지를 발표하기 전인 지난 한 달 동안 부산 대저동 일대에서는 92건의 토지 거래가 이뤄졌다. 이는 지난해 월평균 32건 대비 3배가량 증가한 것이다. 거래는 올해 1월 40건으로 소폭 늘었다가 2월 증가 폭이 훨씬 커졌다. 특히 해당 거래 중 보상 금액이 상당한 도로 중심의 소규모 지분 거래가 절반을 넘게 차지했다. 이 같은 거래는 ‘투기성 거래의 흔적’이라는 것이 인근 중개사들의 설명이다.


/권혁준 기자 awlkwon@sedaily.com, 한민구 기자 1min9@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