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담] 땅투기와의 '동네 싸움', 경찰이라고 '대첩' 만들까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LH직원 투기 의혹에 정부 '셀프조사'로 시간 허비
丁 "패가망신" 경고했지만..."朴정부 때부터 조사"
靑·국토부 ‘0’, LH 7명 추가하고 “범죄와의 전쟁”
수사 노하우 차이 나는데, 특수본엔 檢 배제키로
정치인 연루 의혹도 확산...민심 악화에 卞 사의
‘시간 끌기’ ‘꼬리 자르기’ 논란 선거까지 지속 전망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연합뉴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정치권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국민적 공분과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사의 등에 힘입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LH 직원 20명 외에 본인 명의로 투기를 한 것으로 의심 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는 국무총리실 산하 정부 합동조사단과 청와대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는 가뜩이나 성난 여론을 더 악화시켰다. 의혹 제기 시점부터 신속하게 수사기관에 사건을 넘겨야 했는데 뻔하게 실효성이 없는 ‘셀프 조사’로 수사의 골든타임을 다 흘려보낸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잇따랐다. 여기에 검찰이나 감사원 등을 배제한 채 관련 수사에 노하우가 부족한 경찰 중심으로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를 꾸린 점도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왜 하필 이 사건을 검경수사권 조정의 첫 사례로 삼느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또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은 물론 행정부까지 이번 사태를 정쟁 요소로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앞으로 경찰을 중심으로 구성된 ‘매머드급’ 특수본이 얼마나 신속하게, 성역 없이 수사를 하는지에 따라 성난 민심의 향방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정세균 국무총리. /연합뉴스

LH 직원 투기 의혹 ‘셀프 조사’에 흘러간 수사 골든타임


지난 2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기자회견을 열고 LH 직원 10여명이 지난달 신규 공공택지로 발표된 경기 광명·시흥 신도시 토지 7,000평을 사전에 사들였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단체들은 “공직자윤리법·부패방지법 위반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정세균 국무총리는 같은 날 “사실 관계를 신속히 조사하고 필요한 경우 수사 의뢰 등 철저한 조치를 취하라”며 이해 당사자인 ‘국토부’에 ‘긴급지시’를 내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3일 “3기 신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국토부, LH, 관계 공공기관 등에 관련 부서 근무자와 가족 등에 대한 토지 거래 전수 조사를 빈틈없이 실시하라”며 “조사는 총리실이 지휘하되 ‘국토부와 합동으로’ 충분한 인력을 투입하라”고 지시했다.


정 총리는 이에 4일 정례브리핑에서 최창원 국무총리실 국무 1차장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회와 청와대, 서울시 관계자 등은 조사 대상에 포함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달아올랐던 여론은 더 들끓었다. 국토부도 못 믿겠는데, 국토부가 주체가 된 조사 결과를 누가 믿겠느냐는 반응이었다. 정치인 등 국회와 청와대의 유력 인사들을 조사 대상에서 뺀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나왔다. 논란이 커지자 문 대통령은 다음 날인 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행정관 등 전 직원과 가족에 대한 토지 거래 여부를 신속히 전수 조사하라”고 별도 주문을 내렸다.


정부가 의혹 초기부터 수사기관과 감사원 등 외부 기관에 조사를 의뢰하지 않고 공정성 확보에 소홀히 한 태도도 비판 대상이 됐다. 정부 내각에 정치인들이 유독 많은 만큼 또 다시 원칙에 따른 ‘행정’이 아니라 선거를 의식한 ‘정치’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LH 직원은 물론 정계 인사들까지 의미 없는 정부 조사를 빌미로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번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최창원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 /연합뉴스

여론 악화에 “패가망신” “발본색원” 독설…“조사는 박근혜 때부터”


여론이 갈수록 악화되자 정 총리의 입이 거칠어졌다. 정 총리는 8일 자신의 집무실에서 남구준 경찰청 초대 국가수사본부장을 불러 의혹을 철저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특히 정 총리는 “LH직원 공직자 투기는 국민 배신 행위이고, 사생결단의 각오로 파헤쳐 비리행위자는 패가망신 시켜야 할 것”이라며 전례 없는 독한 발언을 쏟았다.


그는 “국세청, 금융위원회 등 관계기관이 참여하는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특수본)를 설치해 차명거래 등 불법 투기 행위를 철저히 규명하라”며 “부동산 투기 등 민생경제 사건은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른 경찰의 핵심 수사 영역이며 경찰 수사 역량의 가늠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수사 과정에서 검찰의 역할은 언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같은 날 화상 연결로 진행된 법무부와 행정안전부의 업무보고에서 “검경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검찰 수사를 배제할 움직임을 보이자 정치권에서는 잇따라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9일 페이스북에서 “정부는 셀프 조사에 매달려 일주일을 허비했다”며 “증거인멸 시간만 벌어줬다”고 비판했다. 이어 “문 대통령께서 국민들에게 마땅히 사과하셔야 한다”며 검찰 수사역량을 특수본에 파견하고 감사원도 적극 감사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심지어 여권 인사인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서 “검찰을 포함해 모든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 와중에 문 대통령은 9일 “투기는 투기대로 조사하되 정부의 주택 공급 대책에 대한 신뢰가 흔들려선 안된다”며 “2.4 부동산 대책 추진에 차질이 없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 조사단장 최창원 1차장의 8일 브리핑은 또 다른 논란을 불렀다. 투기 거래 조사 범위를 박근혜 정부 때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최 차장은 “3기 신도시 1차 발표 절차를 시작한 게 2018년 12월이므로 이때를 기준으로 5년 전부터의 거래 내역을 들여다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檢 수사 배제 확정…野 “이러려고 수사권 조정했나”


논란 속에서도 정부는 10일 특수본에서 검찰을 배제하기로 사실상 확정했다. 정 총리는 이날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전해철 행안부 장관, 김창룡 경찰청장, 검찰총장 직무대행인 조남관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모두 소집해 ‘신도시 투기 의혹 수사 협력 관련 회의’를 열고 “수사를 맡은 경찰과 영장 청구와 공소의 제기·유지를 담당하는 검찰 간 유기적인 소통과 연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공표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수사는 경찰이 온전히 주도하고 검찰은 영장 청구나 기소, 공소 유지 등에만 관여한다는 원칙을 지키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면서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와 18개 시도 경찰청, 관계 기관 인력 파견 등 총 770명 규모로 꾸리기로 했다. 의혹 규명에 투입된 검찰 인력은 특수본도 아닌, 정부 조사단에 법률자문을 해주러 간 부동산 전문 검사 1명이 전부였다. 박범계 장관은 이날 취재진에게 “검경 간의 유기적 협력에 대해 완전한 합의를 이뤘다”며 “국민들 걱정에 충분히 대응할 태세가 만들어졌다”고 강조했다.


이는 같은 날 아침 정 총리가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내놓은 발언과도 배치되는 내용이었다. 정 총리는 방송에서 수사에 다수의 검사가 투입될 가능성에 대해 “그렇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검찰이 이 수사에서 완전히 배제가 되는 것이냐”는 물음에도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단언했다.


정부의 ‘검찰 배제’ 입장에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돈 문제가 얽힌 대규모 비리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 경찰과 검찰 간 수사 노하우 차이가 크다는 이유였다. 국민의힘 부동산투기조사특별위원회는 10일 기자회견을 통해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지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특위 위원장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당 현역 국회의원의 직계 가족이 3기 신도시 인근 부지인 광명 땅을 매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이번 사건이야말로 대형 부패, 경제 범죄로서 수사 경험이 축적된 검찰의 수사 역량이 절실하다”고 꼬집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정치 진영과 선거를 생각하면 안 된다”며 “네 편 내 편 가리지 않고 엄벌되는 걸 만천하에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토부 ‘0명’에 LH 직원만 7명 추가하고 “범죄와의 전쟁”


민심에 기름을 완전히 부은 건 11일 정부 합동조사단 조사 결과였다. 민변과 참여연대가 의혹을 제기한 13명 외에 ‘본인 거래’ 투기 ‘의심자’는 LH 직원 7명뿐이었다는 ‘맹탕’ 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정 총리는 정례브리핑에서 조사단이 지난 4일부터 국토교통부·LH 직원 1만4,319명의 본인 거래를 조사한 결과 투기 의심자는 총 20명이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모두 LH 직원이었고, 국토부 직원의 의심 거래는 한 건도 포함되지 않았다. 20명 중 11명은 변창흠 장관의 LH 사장 재직 시 의심 거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 역시 비서관급 이상 본인 및 직계가족 368명을 전수 조사한 결과 부동산 투기 의심 거래가 단 한 건도 없다고 발표했다.


조사는 국토부와 LH 임직원 등에게 정보제공 동의서를 받아 부동산거래시스템과 국토정보시스템을 통해 거래내역과 소유 정보를 각각 조사하고 상호 대조하는 작업으로 진행됐다. 정 총리는 차명거래 등 의혹은 정부 특수본에서 철저히 수사하고 불법 행위는 반드시 처벌 받도록 할 것”이라며 “부동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고 공언했다.


부동산 전문가들과 야당은 즉각 정부의 발표를 혹평했다. 직원들의 가족·직계존비속, 차명거래, 개인 정보 미제공자는 조사하지도 못한 탓이었다. 당장 ‘정부 조사는 괜히 왜 해서 시간만 허비했느냐’는 비판이 일었다. 정 총리는 “만약에 이것을 처음부터 수사에 맡겼다면 지금 기초 작업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여론의 반응은 냉담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날 “고작 투기꾼 7명 더 잡아내자고 패가망신을 거론하며 법석을 떨었느냐”며 “차명거래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국토부·LH 직원에만 한정한 이번 조사는 꼬리만 자르고 몸통을 살려내는 데 성공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변과 참여연대 등도 논평을 통해 “예견됐던 대로 합동조사단의 조사 방식은 아주 기본적인 사실 관계를 정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민변 출신 권경애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꼴랑 20명이라면서 ‘부동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정부”라며 “속 훤히 들여다 보이는 전쟁 선포를 이토록 진지하고 비장하게 발표하는 우스꽝스러운 정부를 이전에 경험해 본 적 있는가”라고 평가했다.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연합뉴스

卞 사의에도 민심 흉흉…‘시간 끌기’ ‘꼬리 자르기’ 논란만 이어져


정 총리는 인천·경기와 기초지자체의 개별 업무담당자, 지방 공기업 전직원에 대한 2차 조사를 벌이겠다는 계획도 11일 선보였다. 하지만 이 계획은 여론의 관심도 받지 못했다. 그만큼 정부 조사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진 까닭이었다.


특히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번 사안을 마치 LH라는 특정 기관만의 문제처럼 단정하는 정부 지도층의 태도에 당혹스러워 하는 반응이 나타났다. 시장 원리에 반하는 공공 주도·규제 정책으로 임기 내내 부동산 시장을 망가뜨린 상황에서 지도부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한 네티즌은 관련 기사 댓글에 “사기업의 경우 예기치 않게 주 52시간을 지키지 못하거나 작업장에서 근로자가 다치기만 해도 대표이사가 감옥에 가는 것은 물론, 작은 의혹만으로도 세무조사·압수수색 등으로 삶이 벼랑 끝까지 몰린다”며 “그런데 정부 지도자들은 밑에 사람들을 다그치기만 하면 그만인 것 같다”고 비판했다.


12일에는 LH 고위 간부가 경기 분당 자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그는 정부가 수사 의뢰한 20명에는 포함되지 않은 사람으로 알려졌다. 13일에도 경기 파주의 한 컨테이너에서 50대 LH 파주사업본부 간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여론이 진화되지 않자 문 대통령은 12일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사의를 사실상 곧바로 수용했다. 문 대통령은 “(장관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면서도 “2.4 대책의 공공 주택 공급과 관련한 입법의 기초 작업까지는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는 나아가 특별검사 도입을 민주당에 공식 제안하기도 했다. 민주당 김태년 당대표 직무대행도 이를 즉각 수용하겠다고 나섰다. 이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특검은 검찰이 정권의 눈치를 본다는 의심에 야당 측에서 먼저 제안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찰 특수본 수사가 본궤도에 오른 것도 아니고, 검찰에는 수사를 맡긴 적도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검찰 중심의 수사 이후에 특검을 논의하자”며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내비쳤다.


당분간 정부의 자체 조사와 특수본 수사가 병행되면서 논란은 다음 달 선거까지 이어질 공산이 커졌다. 부동산 민심이 이미 자포자기 상태에 이른 시점에서 이번 의혹까지 LH에 모든 덤터기를 씌우는 것으로 끝날 경우 정부에 대한 신뢰는 더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간 끌기’ ‘꼬리 자르기’ 논란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는 이제 온전히 정부의 후속 대응에 달렸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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