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매업체 크리스티 뉴욕이 지난 11일(현지시간) 진행한 경매에서 NFT(Non Fungible Tokens·대체 불가 토큰) 디지털 그림이 6,930만 달러(약 785억원)에 팔렸다.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가 1972년 수영장을 배경으로 그린 ‘예술가의 초상’이 9,030만 달러(약 1,020억원)에 팔렸을 때나 제프 쿤스의 광택 나는 조각 ‘토끼’가 9,107만 달러(약 1,082억원)에 팔려 생존 작가 경매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을 때도 이번처럼 세간의 반응이 놀랍지는 않았다. 이번 경매의 낙찰작이 실물 없는 JPG파일의 디지털 그림이기 때문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비플'(Beeple)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디지털 아티스트 마이크 윈켈만(39)의 작품 ‘매일: 첫 5000일’(Everydays: The First 5000 Days)이다. 비플은 지난 2007년부터 13년 이상 5.000개 이미지들을 모아 모자이크 형태의 작품을 완성했다.
지난달 25일 100달러로 시작된 이번 경매는 종료 1시간 전까지 약 1,400만달러의 입찰가를 보이고 있었으나 마지막 10분에 이르러 경합이 시작됐고 6,934만 6,250달러에서 멈췄다.
일각에서 ‘디지털 미술사(史)’의 시작이라고도 칭하는 이번 경매는 여러 면에서 전환점을 예고했다. 최근 몇 년 새 진행된 미술품의 디지털 자산화 작업에 대형의 정통 미술품 경매회사가 동참해 NFT 작품을 거래했고 수요자가 이에 화답해 치열한 경합과 높은 낙찰가를 보여줬다는 점이 우선 중요하다. NFT는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처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작품과 구매자 정보를 기록하고 미술품을 디지털 자산으로 바꾸는 암호화 기술이다.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인식값을 갖고 있어 위조나 변조가 불가능하고, 거래 기록이 자동으로 저장된다고 한다. 작품 자체가 진품 보증을 겸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255년 전통의 크리스티는 창사 이래 처음 가상 화폐인 이더리움으로 결제할 수 있도록 획기적으로 변모했다.
통상 2차시장인 경매에는 소장가가 작품을 출품하지만 비플은 작가가 직접 작품을 위탁했다. 과거 데미안 허스트, 쩡판쯔 등 거물급 작가들이 일종의 이벤트처럼 직접 작품을 내놓기도 했지만 이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작가 비플과 그의 가족이 생중계로 경매실황을 보고 있는 모습이 그대로 공개된 것 또한 전통적 미술품 거래 문화를 깨뜨렸다. 쿤스와 호크니에 이어 세계에서 3번쨰로 비싼 작가가 된 비플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예술가들이 20년 이상 디지털 기기로 예술 작품을 만들어 인터넷에 배포했지만 그것을 진정으로 소유하고 수집하는 방법은 없었다”면서 “NFT와 함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고, 나는 미술사의 다음 장인 디지털 예술의 시작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달 초에는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의 아내이자 가수인 그라임스가 NFT로 경매에 내놓은 디지털 그림들이 온라인 경매에서 20분 만에 580만 달러(약 65억원)에 팔렸다. 지난 5일에는 트위터 CEO 잭 도시가 자신의 첫 트윗을 NFT로 판매하겠다며 트윗 장터인 '밸류어블스'에서 경매에 부쳤다. 지난 2006년 3월 21일 “지금 막 내 트위터 설정했음(just setting up my twttr)”라고 올린 한 줄 트윗은 이미 입찰가 250만 달러를 넘겼으며, 도시는 경매 수익을 비트코인으로 전환해 아프리카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