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까지만 해도 업계에서는 ‘쿠팡의 경쟁력이 빠른 배송이라면, 우리는 다른 것에서 경쟁력을 찾겠다’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불과 수개월 사이에 ‘물류는 e커머스(전자상거래)에서 기본’이라는 인식이 빠르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게다가 쿠팡 조차도 전국을 ‘로켓 배달권'에 두지 못할 만큼 현재 유통업계의 배송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물류 센터를 늘려 배송 가능한 지역을 넓히면 넓힐 수록 매출은 그 배송 역량 만큼 늘어나는 구조다. 유통업계가 너나 할 것 없이 물류 센터 확충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것은 이처럼 물류가 유통산업의 ‘성장 방정식’이 됐기 때문이다.
14일 유통 업계에 따르면 쿠팡에서 시작된 풀필먼트 혁신이 특정 업체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이 아니라 이제는 유통 산업의 핵심이자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역량으로 부상했다. 풀필먼트는 상품을 보관·포장·출하·배송하는 전 과정을 일컫는 말로, 주문이 들어오면 대형 물류센터에서 바로 상품을 배송해주기 때문에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또 대형 물류센터에서 인공지능(AI)를 활용해 다양한 상품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에도 용이하다.
이 때문에 물류와 관련된 시설 역시 최근 빠른 속도로 많아졌다.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에 따르면 물류창고업으로 등록된 국내 물류시설의 수가 지난 2018년 260여 곳이었는데 지난해 736여 곳으로 약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여기에는 유통 업체가 상품을 직매입해 보관·판매하는 시설은 포함되지 않아 실제 물류와 관련된 시설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형 물류 센터를 통해 ‘하루에 배송할 수 있는 물량(CAPA)’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이용자들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이는 거래량 증가로 이어져 플랫폼의 경쟁력 확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업계 관계자는 “이전에는 이용자들이 보다 저렴하고 좋은 상품을 얼마나 잘 찾을 수 있게 할지 초점을 맞춰졌다면 이제는 다양한 상품을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배송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물류에 대한 투자가 곧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데 필수 요건이 된 셈이다.
가장 큰 규모의 투자를 하고 있는 업체는 ‘쿠팡’이다. 시가 총액 100조 원을 기록하며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입성한 쿠팡은 이미 국내에 대규모 물류센터 10여 곳을 포함해 총 100여 곳 이상의 물류 시설을 운영 중이다. 여기에 현재 대구, 광주, 대전, 충북 음성, 경북 김천, 충북 제천, 경남 함양 등에 총 7곳의 첨단물류센터를 추가로 건립 중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만 8만7,000달러(약 9,760억 원)에 이른다. ‘로켓배송’의 혁신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쿠팡이지만 여전히 일부 산간지역은 기존 택배업체를 통해 배송하고 있어 당일·익일 배송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쿠팡은 추가 물류센터 건립을 통해 전국을 ‘로켓생활권’으로 만드는 작업을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역시 물류 경쟁력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 10월 국내 1위 물류업체인 CJ대한통운과 3,000억 원 규모의 지분 교환을 한 데 이어 최근 물류 수요를 예측하는 인공지능(AI) ‘클로바 포캐스트(Forecast)’를 자체 개발해 CJ대한통운의 최대 물류센터인 ‘곤지암 e-풀필먼트 센터’에 시범 적용 중이다. 네이버가 보유한 방대한 쇼핑 데이터와 AI 기술력으로 물류 수요예측 모델을 만들고 이를 실제 인력 운용 등에 적용해 물류 효율화를 꾀한다는 계획이다. 또 네이버는 위킵·브랜디·FSS 등 풀필먼트 관련 스타트업에 약 270억 원을 투자했고, 라스트마일 경쟁력 확보를 위해 메쉬코리아와 생각대로 등에도 수백억 원을 투자했다.
연내 상장 계획을 공식화한 신선식품의 강자 ‘마켓컬리’ 역시 매년 2배 이상의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지난달 경기도 김포시에 신선식품 전용 물류센터를 오픈했다. 식품을 취급하는 신선 물류센터로는 국내 최대 규모(총 2.5만여 평)로, 상온·냉장·냉동 센터를 모두 갖췄다. 김포 물류센터 추가로 마켓컬리는 현재 일 평균 주문 처리량인 9만여 건의 2배 가량을 처리할 수 있게 됐다.
11번가는 우체국과 손을 잡고 상반기 중 우체국 택배를 기반으로 한 풀필먼트 서비스를 선보이고, 당일 배송 서비스를 구현할 계획이다. 또 최근에는 근거리 배송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국내 1,000여 개의 허브에 5만5,000여 명의 배송 기사를 운영하고 있는 물류 IT 스타트업 ‘바로고’의 지분 약 7.2%를 확보했다.
이밖에 기존의 대형 유통업체들은 대규모 물류센터 설립보다는 오프라인 매장을 물류센터를 PP센터로 활용해 경쟁력 확대에 나서기도 한다. SSG닷컴은 올해 이마트 점포 리뉴얼을 통해 PP센터를 확대하고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인 ‘네오센터’ 추가 건립에도 나설 계획이다. 이를 통해 현재 13만 건에 불과한 하루 배송 물량을 오는 2025년까지 최대 36만 여 건으로 확대한다. 홈플러스 전국 253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직영점을 통해 ‘전국 1시간 배송’이 가능한 서비스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백주원 기자 jwpai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