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하면 대가를 치러야죠. 그게 마피아의 방식입니다.”
독특한 캐릭터, 독특한 이야기, 독특한 사건해결방식을 앞세워 과거 ‘개그콘서트’의 시간을 점령한 tvN ‘빈센조’가 전환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공장을 날려버리고, 재판을 뒤집고, 거대 악의 뿌리를 뽑아버릴 듯 달려드는 빈센조와 금가프라자 식구들의 복수활극이 ‘내일은 월요일’이라는 비극적 현실을 잠시나마 달래주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김과장’과 ‘열혈사제’에 이어 ‘빈센조’까지, 악당에게 잽 잽 잽을 날리다가 무차별펀치로 K.O시켜버리는 박재범 작가의 이야기방식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통했다. 소재, 캐릭터, 메시지와 이야기 모두 ‘살인사건과 막장’이 주도하는 최근 드라마시장에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 10%대 안착한 시청률
7.7%(닐슨코리아/전국)의 시청률로 출발한 ‘빈센조’는 4화에서 10%를 돌파한 이후 줄곧 9~10%대를 유지하고 있다. 토요일 방송은 SBS ‘펜트하우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일요일은 꾸준히 1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시청자가 확연히 늘어나고 있지는 않으나 고정적인 시청층을 확보하며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 시작부터 밑장빼기 - 스펙타클, 거대한 스케일
첫 방송부터 CG로 구현된 이탈리아의 풍경과 거대한 밭을 모조리 불태우는 스케일은 단번에 시청자를 사로잡기 충분했다. 빈센조가 자신을 해치려는 조직 보스의 스포츠카를 폭발시키고 비행기 퍼스트클래스에 앉아 와인을 즐기며 “나를 찾으려 하지 말라”는 장면은 백미. 이후에도 눈이 높아진 시청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듯 바벨제약의 원료창고가 폭발하는 뒤로 흐르는 오페라 '투란도트'의 'Nessun Dorma (네순 도르마)'는 백미 중에 백미였다.
▲ 듣도 보도 못한 독특함 - 캐릭터
현실과 거리를 두고 재미와 통쾌함을 향하는 이야기의 캐릭터가 일반적일 수는 없다. “마피아가 뭐 먹을게 있다고 한국에 와”라는 국정원 간부의 말처럼, 주인공부터 듣도보도 못한 이탈리아 마피아니 말 다했다. 금가프라자 사람들은 또 어떻고. 엄마손 요리학원에서 배운 프랑스요리사, 전당포, 댄스 교습소, 피아노학원, 분식집, 세탁소까지. 보통사람들 같으면서도 보통사람 같지 않다. 살짝 비어있는 것 같은데 뭉쳐야 할때는 하나같이 야물딱지고, 술 한잔 걸치면 조폭까지 때려잡는 괴력까지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화에 등장한 길버트(안창환)로부터 ‘건물 안에 금괴가 있다’는 말을 들어버렸으니 눈동자가 선명해지는건 당연지사. 좋은 조건에 이주하기로 했던 결정도 언제 그랬냐고 딱 잡아떼기 시작했다. 각종 전자기기를 몸에 두르고 금괴를 찾아나선 이들이 빈센조(송중기)의 목적을 알아채고 또다른 빌런이 될지, 힘을 합쳐 새로운 금가프라자에 입주하게 될지 후반부 이야기는 아직 예측할 수 없기에 더 궁금하다. 괴를 찾아나선 이들이 빈센조의 목적을 알아채고 또다른 빌런이 될지, 힘을 합치게 될지 후반부 이야기는 아직 예측할 수 없다.
▲ 고구마 한입에 사이다 한잔씩, 통쾌하잖아 - 직진 복수극
박 작가의 전작 ‘열혈사제’와 같이 주인공 빈센조는 ‘손톱만 스쳐도 주먹으로 되갚는’ 스케일로 아드레날린을 사정없이 뿜어낸다. 금가프라자의 소유권을 빼앗긴 뒤 입주자들을 내쫓기 위해 쳐들어온 조폭들을 혈혈단신으로 해치우면서 시동을 걸더니, 홍유찬(유재명) 변호사를 죽게 하고 자신에게도 위협을 가하자 바벨제약의 원료창고를 사정없이 날려버린다.
계열사 하나하나를 박살내기로 마음먹은 그는 자신이 받았던 위협 그대로 최명희(김여진) 변호사를 위협하고, 바벨 측 증인인 의사의 불륜을 이용해 바벨제약 산재 피해자들의 승소까지 이끌어낸다. 타격을 입은 바벨그룹이 신광은행과 불법 투자협약을 짜고 치려고 하자,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로 변신한 빈센조가 끝내 협약식을 막지는 못하지만 누명을 쓴 친모의 복수만큼은 확실하게 끝낸다.
이제 남동부지검까지 움직여 더 막대한 투자유치를 계획하는 바벨을 막아야 한다. 시작은 실제 보스를 찾아내는 것. 이들이 장준우(옥택연)이 실제 회장이라는 것을 어떻게 찾아낼지도 예측할 수 없다. 태호는 무섭다. 그럴수록 시청자들은 즐겁다.
▲ 재미와 흐름끊기 사이에서 - 과장된 표현, 연기
‘김과장’, ‘열혈사제’, ‘빈센조’까지 박 작가의 작품에는 한 눈에 봐도 비현실적인 인물이 비현실적 일들을 벌이지만 묘하게 현실과 연결되는 특징이 있다. 주제도 폭력을 수반한 악당들의 계략을 막고 평범한 사람들을 지켜내는 이야기로 유사한 점이 많다. 주인공은 회사원에서 신부님, 마피아로까지 확장됐다. 보다 폭력적일 수 있으나, 그만큼 자유로운 ‘수’를 쓴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특히 ‘빈센조’는 악(惡)으로 악을 처벌하는 인물인 만큼 권선징악이 아닌 ‘권선멸악(勸善滅惡)’까지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과장된 스타일을 불편해 하는 시청자도 있을 수 있다. ‘빈센조’의 경우 주인공 빈센조를 제외한 등장인물 중 차분하게 극을 이끌어가는 캐릭터가 없다. 들떠있는 듯한 표정과 과장된 몸짓, 목소리는 흐름보다 매 순간 강한 인상을 남기려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다. 이런 경우 재미는 있는데 뭔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온다.
▲ 세수하려고 받은 물에 걸레빨기 - PPL을 어찌할꼬
지난주 방송에서 등장한 빈센조와 홍차영이 돌솥비빔밥을 먹는 장면은 다시금 tvN의 PPL 활용방식에 대한 비판에 불을 붙였다. ‘여신강림’에서 버스정류장 광고판, 편의점 식사 장면에 중국 상품을 PPL로 노출시켜 한차례 논란이 됐던 만큼 날 선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더욱이 최근 중국 내에서 한복은 물론 김치의 원조가 ‘파오차이’라며 ‘김치공정’을 벌이는 등 냉랭한 상황에서 중국 상호를 단 비빔밥을 노출한 것은 상당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도 SNS에 안타까운 결정이라며 “가장 우려되는 건, 중국어로 적힌 용기에 담긴 비빔밥이 자칫 해외 시청자들에게 중국음식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일부 네티즌은 해당 제품이 청정원과 중국 브랜드 즈하이궈의 합작 회사에서 만들었기에 중국 PPL이라 볼 수 없다는 의견도 냈으나, 청정원 측은 16일 “즈하이궈에 김치 원료를 단순 납품할 뿐 합작 형태가 아니다”라며 “즈하이궈의 국내 마케팅 활동이나 PPL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드라마시장에 PPL이 ‘필요악’으로 자리잡은 이후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고 있으나, 중국의 김치공정과 엮인 만큼 이번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작품의 흐름을 깬다는 단순한 논란과는 차원이 다른, 작품의 정체성마저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해당 제품의 노출을 취소한다 하더라도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바벨그룹이랑 상관없이 ‘빈센조’의 최대 위기는 이번주다.
/최상진 기자 csj8453@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