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이 월가에 데뷔한다. 운용 자산만 4조 달러(약 4,488조 원)에 달하는 대형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가 ‘비트코인 펀드’ 출시를 알렸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펀드 출시는 대형 IB 중 첫 사례다. 비트코인이 투기성 짙은 자산이라는 비판을 딛고 포트폴리오 다각화,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 등으로 집중적인 관심을 받으며 제도권 시장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지불수단, 부의 저장 수단이 되기에는 여전히 너무 위험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17일(현지 시간) 미 경제 방송 CNBC에 따르면 모건스탠리는 이날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비트코인을 소유할 수 있게 하는 펀드 3개를 출시한다고 밝혔다. 갤럭시디지털의 비트코인 펀드 2개와 FS인베스트먼츠와 NYDIG가 합작한 비트코인 펀드 1개가 투자 대상이다. 소식통은 펀드 출시는 고객들의 요청에 따른 것이며 이르면 다음 달 펀드가 운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모건스탠리는 비트코인의 변동성을 우려해 안전장치를 걸어놓았다. 모건스탠리는 계좌를 개설한 지 6개월이 넘은 이들 중 자사에 맡긴 자산이 200만 달러(약 22억 5,000만 원) 이상인 개인 고객과 계좌 잔액이 500만 달러가 넘는 기업 고객에게만 비트코인 투자를 허용했다. 투자액도 전체 순자산의 최대 2.5%로 제한된다.
이번 펀드 출시를 계기로 미 금융 업계에 비트코인 투자 상품 출시 바람이 불지 주목된다.
그간 테슬라·블랙록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비트코인 투자에 나서면서 비트코인 가격은 급등세를 탔다. 가령 테슬라의 경우 비트코인에 15억 달러를 투자했고, 잭 도시 트위터 최고경영자(CEO)는 비트코인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재단 ‘비트러스트 펀드’를 조성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반해 금융계는 비교적 신중한 모습이었다. 지난달 모건스탠리가 자회사 카운터포인트글로벌을 통해 비트코인에 직접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으나 골드만삭스와 JP모건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자산 운용 부문은 현재 투자 자문역들에게 비트코인 직접 투자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이번 조치가 미국에서도 암호화폐 관련 상품이 공식 출시되는 발판이 될 수도 있다. 지난달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를 승인해 출범시킨 캐나다, 비트코인에 이어 이더리움에 투자하는 첫 상장지수상품(ETP)을 출시한 독일과 달리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사기 위험 등을 이유로 비트코인 관련 ETF 출범을 불허해왔다. 현재 SEC는 최근 세 달간 승인 신청된 비트코인 ETF 4건의 출시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물론 비트코인을 향한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BoA는 이날 ‘비트코인의 작고 더러운 비밀’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비트코인은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 실용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프란치스코 블랜치 파생상품 담당 전략가는 “비트코인의 95%는 전체 계정의 2.4%에 의해 통제된다”면서 “비트코인이 소수에게 집중돼 일반적인 지불수단으로 자리 잡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비트코인을 채굴할 때 그리스 전체 전력 소모량에 맞먹는 전기가 들고, 비트코인의 익명성이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호주 공영 ABC 방송도 국제 학술지 ‘줄’에 실린 금융경제학자 알렉스 드 브리스의 연구를 인용해 “비트코인을 채굴하기 위해 드는 전력 소비량이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페이스북의 전력 소비량을 합친 것의 10배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세계 각국이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 화폐(CBDC)’ 출범을 앞두고 비트코인 규제 필요성에 한목소리를 내는 점도 부담이다. 인도는 비트코인을 보유하기만 해도 벌금을 물리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재닛 옐런 미 재무 장관 역시 비트코인 규제 가능성을 시사했으며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는 다음 달까지 암호화폐 채굴을 전면 금지했다. 이들 국가는 비트코인 변동성과 에너지 절감을 이유로 규제 카드를 꺼냈다. 각국 중앙은행이 CBDC 출시를 공식화한 상황에서 통제가 어려운 비트코인의 영향력이 더 커지기 전에 각종 규제 등을 활용해 비트코인을 손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곽윤아 기자 o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