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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국채금리 상승세의 고삐가 풀렸습니다. 18일(현지 시간) 미 국채금리가 한때 연 1.75%대까지 치솟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전날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더 높은 인플레이션이 올 것이라고 하면서도 국채 시장은 그냥 놔두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인플레이션을 용인하겠다는 이 말에 시장이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하루였습니다. 이날 나스닥은 3% 넘게 급락하기도 했죠. 이번 주 내내 계속되는 이슈지만 그만큼 주의깊게 봐야 하기에 시장의 반응을 짚어보겠습니다.
미 경제 방송 CNBC는 18일(현지 시간) 전날 파월 의장의 기자회견을 두고 “국채수익률 상승의 그린라이트를 켰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3분 월스트리트’에서 전해드렸듯 통화정책 판단의 기준이 되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인플레이션이 올해 2.2%까지 오를 것이라면서도 국채시장에 개입할 일은 없다고 선을 그었기 때문입니다. 파월 의장은 “지금의 통화정책이 적절하다”며 사실상 장기채 매입비중 확대(오퍼레이션 트위스트)가 없다고 잘라 말했고 은행의 채권보유 관련 규제완화 연장에 대해서는 “다음에 얘기하자”며 회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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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시장이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국채금리는 다시 급등하고 나스닥은 직격탄을 맞는 것이죠. 월가의 한 관계자는 “한참 뒤에 되돌아보면 지금이 긴축발작이었다고 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는 얘기까지 했는데요. 제임스 폴슨 루트홀츠그룹 최고투자전략가는 “(증시는) 조정을 받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경제활동 재개가 속도를 내고 있어 인플레이션 우려는 더 커질 수밖에 없는데요. 미 경제 방송 CNBC에 따르면 백악관이 5월 중순께 여행제한을 철폐하고 닫힌 캐나다와 멕시코 국경을 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5월1일 모든 성인이 백신을 맞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만큼 5월 중순쯤에는 다시 여행재개를 해도 된다는 판단인 겁니다. 가뜩이나 빨라지고 있는 경기회복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입니다.
전래동화 ‘여우누이’를 보면 장남이 구미호인 여동생에게 사전에 받아온 호리병 세 개를 던져 목숨을 건지는 내용이 나옵니다. 연준에게도 이와 비슷한 호리병이 있는데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전날 파월 의장은 보완적 레버리지비율(SLR) 완화 연장에 관해서 즉답을 피했습니다. “며칠 뒤에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연준의 1차 무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SLR을 연장하면 시장에 많이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효과가 있을 겁니다. 금융사들이 국채를 계속 살 수 있기 때문이죠. 국채를 내다팔아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도 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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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은 정책을 한 번에 몰아서 할 수도 있고 하나씩 하나씩 할 수도 있습니다. 서로의 장단점이 있는데 앞의 것은 시장이 예상하는 것 이상의 정책을 통해 충격을 줘 한 번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죠. 반대로 이 경우 약발이 안 들을 경우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다음 카드가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씩 하나씩 풀면 땜질식 대책이라고 비난을 받긴 하는데 계속 상황을 봐가며 대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불확실성이 클 때 이용하죠. 연준이 SLR에 대해 시차를 둔 것은 국채시장의 움직임을 고려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후 국채가 빠르게 오르면 끄때 연장이나 부분 연장 카드를 꺼내 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이죠.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도 연준의 도구함 가장 밑에 남아있습니다. 수익률곡선제어(YCC·Yield Curve Control)도 마찬가지죠. 최악의 경우 하나씩 꺼내서 대응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정책을 펴는 기본방식은 비슷합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있으면 전체적인 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파월 의장이 “시장이 무질서한 경우” 개입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는 점도 잊으면 안 됩니다. 물론 최대한 버티고 개입을 꺼리겠지만 말이죠.
세계 최대 채권투자회사 핌코에서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선임 고문은 전날 FOMC 결과를 두고 “연준의 훨씬 나은 경기전망과 연준의 정책 미변경, 조용한 채권시장 이 세가지는 절대로 공존할 수 없다”며 “아침의 국채금리 움직임은 시장이 ‘가만 있어보자. 경기전망이 훨씬 좋아졌는데 연준이 아무 것도 안 한다는 것은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있다는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는데요.
그러면서 “연준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다. 국채금리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연준에 대응수단이 남아있지만 시장이 한번 방향을 틀기 시작하면 큰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전직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인 윌리엄 두들리는 “연준은 아마도 지금의 전망보다 금리를 빨리 올리게 될 것”이라고 점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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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수요측면에서 희망이었던 일본이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의 변동폭을 확대하기로 했다는 보도도 한몫하는데요. 마켓워치에 따르면 일본은행(BOJ)는 수익률곡선제어를 통해 10년 물 금리를 -0.20~+0.20%로 캡을 씌워뒀는데 이를 -0.25~+0.25%로 확대한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장중 최저 0.085%를 기록했던 10년 만기 일본국채가 한때 0.122%까지 올랐습니다.
그동안 일본과 미국의 국채금리 차이가 커 일본이 미국 국채를 많이 사들일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는데요. 이를 고려하면 미국의 국채금리가 안정화할 것이라는 말도 있었는데, 일본 채권의 금리가 뛰면 미국 국채수익률이 더 높아야 매력이 생기겠죠.
결국 연준은 다음 번 경기전망을 발표하는 6월 FOMC에서 다시 한번 도전을 맞게 될 겁니다. 짐 캐론 모건스탠리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채권투자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2분기에 두자릿수 성장을 하게 될 건데 이때 가서도 연준이 그동안의 입장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문제”라며 “다음 번 경기전망이 나오는 6월 FOMC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이 또한 어제 ‘3분 월스트리트’에서 전해드린 내용과 같습니다. 시장의 반응을 계속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뉴욕=김영필 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