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길이만 2m에 달하는 기린은 뇌까지 혈액을 보내 산소를 공급해야 하다보니 인간이나 다른 포유류의 2.5배에 달하는 고혈압을 갖고있다. 그런데도 심혈관계 질환이나 뇌졸중 등과 같은 심각한 부작용은 겪지 않는다. 이런 독특한 혈압 체계와 관련된 기린의 유전자가 확인돼 인간 고혈압 치료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과 과학 저널 '사이언스'의 뉴스사이트인 '사이언스맥닷오르그'(SciencMag.org)에 따르면 코펜하겐대학 생물학과 라스무스 헬러 부교수 등이 참여한 국제 연구팀은 기린 게놈 분석을 통해 'FGFRL1'이라는 유전자를 가려낸 결과를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를 통해 발표했다.
연구팀은 수컷 '로스차일드 기린'(Giraffa Camelopardalis rothschildi)의 유전자를 97%까지 분석하고, 기린의 근연종인 '오카피'를 비롯한 50종의 포유류와 비교했다. 오카피는 약 1,150만년 전에 기린에서 갈라진 종으로 짧은 목에 얼룩말 크기의 체형을 갖고있다.
연구팀은 유전자 비교를 통해 기린에서 독특한 변화를 보인 490개의 유전자를 가려냈으며, 특히 7가지의 변이를 보인 FGFRL1에 주목했다. 이 유전자의 변이는 인간과 쥐에서 심혈관이나 뼈의 결함으로 나타나곤 한다.
연구팀은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CRISPR)를 이용해 기린의 변이 FGFRL1을 실험용 쥐에 삽입하고 혈압을 높이는 약물을 주사한 뒤 일반 실험용 쥐와 비교했다.
그 결과, 일반 실험용 쥐는 고혈압이 생기고 신장과 심장 등 장기가 훼손됐지만 기린의 변이 유전자를 가진 실험용 쥐는 혈압이 약간 올랐지만 건강한 상태를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뼈의 밀도도 더 높아지고 단단해지는 결과를 얻었다.
헬러 부교수는 "이런 결과는 다른 포유류보다 빨리 자라면서 긴 목과 다리를 갖게됐지만 고혈압에 대처하고 단단한 뼈를 유지해 지탱하는 기린의 독특한 생리적 특성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FGFRL1 유전자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인간의 고혈압 치료로 연결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고혈압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여러 개고, FGFRL1이 인간의 고혈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증거가 없어 아직은 치료적 접근을 말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신중론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또 고혈압 관련 유전자 이외에 기린의 짧은 선잠 및 생체리듬 등과 관련된 유전자도 확인했다.
기린은 주변의 포식자를 경계하느라 하루 40분밖에 자지 않으며 그나마도 3~5분씩 끊어서 잔다. 다리가 길어 일어서는 것조차 버거운 상태에서 깊은 잠에 빠질 수 없었으며 이때문에 다른 포유류보다 훨씬 짧게 잠을 자는 쪽으로 생체리듬을 맞춰 진화해온 것으로 분석됐다.
이와 함께 기린이 발굽을 가진 유제류 중 가장 좋은 시력을 갖고 주변을 경계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오카피와 비교해 후각관련 유전자 53개를 상실한 것도 확인됐다.
헬러 부교수는 지상 6m 높이에서 후각은 별 의미가 없을 수 있다면서 "하나가 좋아지면 다른 것이 나빠질 수 있는데, 기린은 좋은 시력과 후각을 교환했다"고 설명했다.
/김기혁 기자 coldmet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