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가파른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신흥국들은 선진국으로의 자금 유출을 우려하며 기준금리 인상에 하나둘 나서고 있다. 경제 펀더멘털이 취약한 국가들의 경우 여전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후유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긴축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브라질을 비롯한 주요 신흥국 중앙은행들은 최근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우선 브라질 중앙은행은 17일(현지 시간) 기준금리를 2%에서 2.75%로 0.75%포인트 올렸다. 기준금리 인상은 지난 2015년 7월 이후 거의 6년 만이다. 터키도 기준금리를 17%에서 19%로 2%포인트나 올렸다.
19일 기준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하는 러시아 중앙은행도 인상 가능성이 제기된다. 나이지리아와 아르헨티나는 이르면 올해 2분기에 금리 인상을 시작할 것으로 관측된다. 유럽의 변방 터키도 18일 기준금리를 17%에서 19%로 2%포인트 올렸다. 시장에서는 외환보유액이 넉넉하지 않아 자본 유출 우려에 취약한 국가들이 서둘러 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다고 해석한다. 실제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난달 마지막 주 중국·러시아·인도 등 30개 신흥국 주식 및 채권시장에서 하루 평균 약 2억 9,000만 달러(약 3,280억 원) 규모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주간 기준 신흥국 자금 이탈은 지난해 10월 이후 처음이다. 이와 함께 식량·원유 등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신흥국에서도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있는 것 역시 금리 인상의 주요 배경이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의 지아드 다우드 신흥국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대부분의 신흥국이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도 금리 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신흥국은 선진국에 비해 코로나19 백신 접종 속도가 느려 경기회복에 걸리는 시일이 훨씬 더 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시장에서는 중국 역시 긴축으로 점점 선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금융 부문 수장인 궈수칭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 주석은 2일 “코로나19 이후 각국이 모두 적극적인 재정 정책과 완화된 통화정책을 편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일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특히 세계 금융시장과 자국 부동산에 거품이 끼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물론 중국은 다른 신흥국과 달리 지난해 세계적으로 드문 플러스 경제성장을 달성한 만큼 자금 유출 우려보다는 자국의 급증하는 부채 문제로 긴축을 고민하는 상황이다.
긴축이 신흥국들만의 고민거리는 아니다. 일본은행(BOJ)은 19일 이틀간의 금융정책결정회의를 마치고 장기(10년물) 국채금리의 변동 폭을 약간 넓힐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장기 금리 범위는 기존에는 -0.2%에서 0.2% 정도였는데 -0.25%에서 0.25%로 확대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금리 변동을 쉽게 하고 금융기관이 국채 매매를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면서 “일본은행의 양적완화는 장기간 계속되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금융기관의 수익 악화 등 부작용도 있는 만큼 이번 정책 수정은 긴축으로도 선회할 수 있는 여력을 만들겠다는 의도 또한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당장 긴축으로 돌아설 가능성은 낮지만 향후 엔화 가치 변동성이나 경기 불확실성에 대비해 정책을 펼치는 운신의 폭을 넓히겠다는 의미다.
주요국들의 기준금리 인상 시점이 예상보다 이를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노르웨이는 18일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0%로 동결했지만 금리 인상 가능 시기를 올해 하반기로 앞당겨 잡았다.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이 통화정책을 코로나19 사태 이전으로 정상화하는 시점이 오는 2022년 말이나 2023년으로 앞당겨졌다”고 전망했다.
/김기혁 기자 coldmet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