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캐·부캐 쉽게 온오프하는 MZ세대, 현실에 메타버스 입혔다[토요워치]

게임·엔터테인먼트 넘어
생활영역으로 급속 확산
비대면이지만 생생해 MZ세대 선호
글로벌 기업 VR·AR 주도권 싸움

코딩 교육 스타트업 코드스테이츠가 지난해 대규모 세미나를 가상공간 화상회의 시스템 ‘개더타운’에서 진행한 가운데 참석자들의 캐릭터들이 함께 모여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코드스테이츠



부동산 중개 스타트업 ‘직방’ 은 지난달부터 오프라인 사무실을 닫고 모든 직원이 각자의 공간에서 원격 근무를 한다. 대신 각 직원의 캐릭터가 가상공간에 마련된 사무실로 출근한다. 가상공간 화상회의 시스템인 ‘개더타운’ 플랫폼을 실행하면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캐릭터가 실제 사무실과 유사하게 꾸며진 사무실 자리에 착석한다. 복도를 지나가다 동료 캐릭터와 마주치면 비디오 대화 기능이 켜지면서 잡담을 하거나 간단한 회의를 할 수도 있다. 사무실 앞의 게시판에는 직원들을 위한 공지 사항도 걸려 있다. 이것을 보려면 실제로 게시판 앞으로 캐릭터를 이동시켜야 한다. 오프라인에서 출근을 하면 벌어질 법한 풍경들을 가상 사무실에 그대로 구현해 직원들의 대면 욕구를 해소시켜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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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초월(meta)과 세계(universe)의 합성어로 3차원 가상 세계를 뜻하는 ‘메타버스’가 본격적으로 우리 일상에 파고들고 있다. 게임·엔터테인먼트뿐만 아니라 학교·회사 등 생활 영역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가상 세계의 아바타로 구현된 사람들이 회의 등 일을 하고 함께 시간도 보낸다. 메타버스는 ‘본캐(본캐릭터)’와 ‘부캐(부캐릭터)’ 간 전환이 자유롭고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데 거부감이 없는 Z세대를 만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오프라인 연결 고리가 약해진 상황에서 몰입감뿐 아니라 소속감·정체성까지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평가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메타버스는 캐릭터가 실재하는 자신과 일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Z세대의 사고방식과 대면 커뮤니케이션은 꺼리지만 생생한 친밀감은 선호하는 성향과 맞물려 인기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이버 가수 아담, 싸이월드 미니미부터 예고된 메타버스

‘메타버스(metaverse)’는 초월·변화를 나타내는 ‘메타(meta)’와 우주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다. 메타버스라는 용어는 지난 1992년 출간된 닐 스티븐슨의 SF 소설 ‘스노 크래시’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SF 소설 속 ‘관념’에서 시작된 메타버스는 30년이 흐른 현재 증강현실(AR)·가상현실(VR)과 결합해 현실과 가상을 잇는 ‘실재’로 다가오고 있다.


메타버스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현실 같은 가상 사회의 등장은 1990년대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한다. 시작은 게임이었다. 가상 세계를 구현한 게임이 인터넷을 만나 ‘커뮤니티’를 구현한 것이다. 날로 발전하는 컴퓨터 성능은 좀 더 현실적인 가상 세계를 그려낼 수 있게 도왔다. 1997년 출시돼 세계적인 인기를 끈 온라인 게임 ‘울티마온라인’은 음식을 먹지 않으면 죽고 땅을 사 집을 짓고 다른 이용자에게 상해를 입히면 수배 당하는 세계를 구현했다. ‘아바타’ 또한 울티마온라인을 통해 널리 퍼지게 된 단어다. 2003년에는 ‘세컨드라이프’가 출시됐다. 사이버 세계 안에 기업을 설립해 큰돈을 번 사례가 등장하고 세컨드라이프를 이용해 선거 유세에 나서는 일도 벌어졌다. 너무나 현실을 충실히 모사해 아바타 간 성행위가 논란이 될 정도였다.



SM엔터테인먼트의 걸그룹 에스파. /SM엔터테인먼트


역설적이게도 움트던 초창기 메타버스의 싹이 시든 것은 스마트폰의 등장 때문이었다. 초기 스마트폰은 PC 성능을 따라가지 못했다. 개발자들도 모바일 시대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모바일 기기 성능이 크게 개선되고 모바일·디지털 네이티브인 ‘MZ세대’가 성장한 2010년대 후반 들어 다시 날개를 달았다. 메타버스의 토대는 가상과 실재의 경계를 모호하게 인식하는 ‘문화’다. 이 문화를 내재화한 세대가 성장해 주요 소비군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메타버스가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이제 가상은 현실로 튀어나온다. 지난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닌텐도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 내에서 선거운동을 벌였다. 청와대는 지난해 어린이날 게임 ‘마인크래프트’ 속에 청와대를 만들어 어린이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아티스트도 현실과 가상을 넘나든다.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걸그룹 ‘에스파’는 현실의 멤버와 함께 아바타를 내세웠다. 라이엇게임즈는 게임 속 캐릭터로 구성한 걸그룹 ‘K/DA’를 선보였다. 가상 인플루언서도 인기다. 가상 인플루언서 ‘세라핀’은 K/DA 객원 멤버로 참여한 후 게임 캐릭터로 출시됐다. 가상 인물 미켈라는 팔로어가 500만 명을 넘는다. 네이버가 출시한 메타버스 애플리케이션 ‘제페토’는 가입자가 2억 명에 달한다. 전체 이용자 중 10대가 80%다. 걸그룹 블랙핑크, 팝 가수 설리나 고메즈가 제페토 3D 아바타로 만든 뮤직비디오는 조회 수가 1억 회를 넘겼다.


최근에는 다양한 현실에 메타버스가 도입되고 있다. 코딩 교육 스타트업 ‘코드스테이츠’는 지난해 말 교육생들이 모여 ‘알럼나잇’ 세미나를 진행했다. ‘개더타운 플랫폼’에 마련된 가상 콘퍼런스장에서였다. 이름표를 달고 있는 캐릭터들이 대규모로 착석할 수 있는 회의장에는 제각각 다르게 생긴 캐릭터들이 줄을 맞춰 착석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발표자가 강연을 할 때는 캐릭터가 아닌 실물이 등장해 영상으로 강연을 시청하고 끝난 뒤에는 캐릭터들이 무대 앞에 줄지어 서서 단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순천향대는 이달 2일 열린 입학식을 가상공간에서 진행했다. SK텔레콤과 협업해 ‘점프VR’ 앱 내에 입학식이 열리는 순천향대 대운동장을 구현했다. 자신의 아바타를 멋들어지게 꾸민 21학번 신입생들은 앱 내에서 전광판을 통해 식순을 보고 서로 인사도 나눴다.


이용자들이 모이면 돈으로 연결된다. 10대들은 제페토 내 아바타를 꾸미기 위해 거리낌 없이 지갑을 연다. 가상 인물 릴 미켈라는 지난해 1,17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지난해 4월 인기 게임 ‘포트나이트’ 내에서 열린 미국 힙합 뮤지션 트래비스 스콧의 라이브 매출은 2,000만 달러에 달했다. 미국 10대 55%가 가입한 메타버스 게임 ‘로블록스’에서 크리에이터들이 벌어들인 수익은 지난해만 3억 3,000만 달러(약 3,700억 원)에 달했다. 로블록스는 이달 10일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직후 시가총액이 380억 달러(약 43조 원)를 넘어섰다. 박정호 SK텔레콤 대표는 연초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신년사에서 “(코로나19로 촉발된)국가 간 이동과 여행 중단, 사교가 제한된 일상이 가상 세계(메타버스)로 진화하는 속도를 10년은 앞당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고 쌓이던 VR·AR기기도 기지개


마이크로소프트의 확장현실 헤드셋 홀로렌즈2를 착용한 모습/마이크로소프트


이에 차세대 유망 미래 기술로 주목받던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산업도 새로운 부흥기를 맞으면서 빅테크 기업들이 잇따라 VR·AR 신제품 출시를 예고하며 VR·AR 하드웨어 시장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5세대(5G) 통신 기술 등 관련 인프라의 발달과 더불어 메타버스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2015~2016년 당시 4차 산업혁명 수혜주로 꼽혔던 VR·AR 산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점차 신제품 출시 주기가 짧아지고 가격, 무게, 어지럼증 등의 문제점이 개선되면서 본격적인 상용화 시대가 열리고 있다. 페이스북이 지난해 선보인 확장현실(XR) 헤드셋 ‘오큘러스 퀘스트2’가 대표적. 퀘스트2는 출시 3개월 만에 100만 대 이상이 팔리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SK텔레콤과 협력해 40만 원대로 국내에 출시된 퀘스트2는 3일 만에 1만여 대가 팔려나갔다.


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2’는 AR 기기 시장에서 기술력을 내세워 승부수를 던졌다. 삼성전자와 애플도 AR 글라스(안경) 시장에 뛰어든다. 애플은 내년에 VR·AR 헤드셋을, 2025년에 AR 안경을 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삼성전자의 AR 안경 시제품으로 추정되는 뿔테 선글라스 형태의 제품이 담긴 영상이 트위터에서 공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VR·AR 기기는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는 물론 의료, 제조, 건축 등 산업 전반에서 활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마이크로소프트는 브라질 의료진이 프랑스와 미국의 의료진과 실시간 협업하며 홀로렌즈를 이용해 관절경 수술을 진행한 사례를 공개하기도 했다.





글로벌 IT 기업들은 공격적인 투자에도 나서고 있다.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 등은 VR 게임사, 스튜디오 등 관련 기술을 보유한 기업과 스타트업을 잇따라 인수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마인크래프트 개발사 ‘모장’ 인수, 페이스북의 뇌과학 스타트업 ‘컨트롤-랩스’ 인수가 대표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VR·AR 기기가 대중화되지 못했던 이유들이 메타버스 활성화로 빠르게 해소되고 있다”며 “VR·AR 기기가 스마트폰에 버금가는 시장을 형성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혜진 기자 madein@sedaily.com, 윤민혁 기자 beheren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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