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에 100원의 희망 쌓기…진오스님 "다같이 행복한 세상 위해 뛰죠"

'탁발 마라톤' 진오스님 인터뷰
베트남 노동자 돕기로 시작
송인서적 살리기 1억 모금도
11년간 달린 거리만 2만㎞
코로나 종식되면 美대륙횡단 나설것

진오스님.

“저의 달리기는 불교식 ‘탁발 마라톤’입니다. 제 몸을 움직여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그만한 포교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들에게 ‘불교 믿읍시다’ 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낫지 않을까요. 하하(웃음).”


최근 ‘책 생태계 살리기 전국 서점순례 마라톤’을 완주한 진오스님이 수화기 너머로 호탕한 웃음을 터뜨린다. 스님이 인터파크송인서적 인수 자금을 모금하기 위한 대장정에 오른 것이 지난 2월 26일. 부산 진구 영광도서 앞에서 출발한 스님은 서울 종로구 대한출판문화협회 앞까지 하루 평균 45㎞, 12일 간 총 525㎞를 달렸다. 처음에는 500㎞가 목표였지만 지역 별로 동네서점 1~2곳 씩을 들르다 보니 거리가 늘었다. 승복 차림에 모자와 마스크를 쓴 스님은 ‘아름다운 세상 같이 살자’ 라고 적힌 손수레를 밀며 총 15개 지역 서점을 들러 지난 9일 서울에 당도했다. 마라톤을 완주하고 다시 구미 금오산 마하붓다사으로 내려간 진오스님을 전화로 만났다.



진오스님이 부산에서 서울까지 대장정에 앞서 부산의 한 서점에서 만나 동네서점 대표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사진제공=마하붓다사

스님은 “마라톤이 끝나고 절로 돌아오자 마자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며 “요즘은 묵언하며 속도를 겨루는 마라톤보다 깨끗한 산 공기를 마시며 동반자와 대화할 수 있는 트레일 러닝에 빠져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서점 순례 마라톤에 대해서는 “모두 주변 스님들의 도움으로 가능했던 일이었다”며 “불교계 일이 아닌데도 숙식을 지원해주며 ‘잘하는 일'이라는 칭찬도 들었다”고 감사함을 전했다.



‘책 생태계 살리기 전국 서점순례 마라톤’을 진행 중인 진오스님이 세종시 인근을 지나며 응원객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사진제공=마하붓다사

출판계와 스님의 인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일문고 대표인 김기중 한국서점인협의회장이 스님이 운영하는 다문화모자지원센터 건립에 기부금을 전달하면서 후원자와 봉사자 관계로 맺어졌다. 이후 한국서점인협의회가 부도 위기에 놓인 인터파크송인서적을 살리기 위한 인수 협상을 진행하면서 이번에는 반대로 스님이 후원자로 나섰다. “'인터파크송인서적이 무너지면 중소 출판사 2,000여 곳과 동네 서점 1,000여 곳이 피해를 입어 회복 불능의 상황을 맞게 된다'는 말에 뛰게 됐다”고 설명했다.


인터파크송인서적은 1959년부터 전국 중소 서점에 책을 공급해 온 국내 2위 도서 도매업체지만, 누적된 영업 적자로 부도 위기에 몰려 있다. 필요 자금은 총 35억 원. 서점인과 출판계 등이 십시일반으로 20억 원을 모았으나, 오는 25일까지 15억 원을 추가로 모으지 못하면 청산될 운명에 처해 있다.


스님의 마라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을 통해 알려지면서 모인 금액은 총 1억 원이다. ‘1㎞에 100원 씩의 희망’이라는 주제로 뛴 마라톤에 목표액의 2,000배 넘는 금액이 모였다. 이번 마라톤을 계기로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출자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스님은 “필요한 자금에는 한참 부족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라톤으로 출판계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일이었다"고 전했다.


진오스님이 달리기 시작한 계기는 건강이었다. 외국인 지원센터와 쉼터, 사찰 등을 동시 운영하면서 10여 년 전 몸에 이상 신호가 왔다. 스님은 “간염 진단을 받고 약이 아닌 운동으로 고치고 싶다는 생각에 뛰기 시작해 1년 만에 건강을 회복했다. 뛰다 보니 나 자신이 아닌 공적인 일을 위해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모금액을 목표로 마라톤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진오스님은 모금 마라톤을 뛰지 않는 날에는 아스팔트 도로가 아닌 산이나 숲길을 달리는 트레일 러닝을 하며 체력을 단련한다./사진제공=마하붓다사

스님은 ‘탁발 마라톤’으로 수많은 모금 활동을 벌여왔다. 2011년 베트남 노동자를 돕기 위한 모금 마라톤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달린 거리는 총 2만㎞에 달한다. 2013년 ‘일본 쓰나미 피해 돕기 마라톤(1,000㎞)’ , 2014년 ‘세월호 참사 유가족 돕기 마라톤(500㎞)’, 2018년 ‘스리랑카 지진 피해 돕기 마라톤(330㎞)’ 등 주제도 다양하다.


스님은 “저희 절에 오시는 분들 대부분이 마라톤을 통해 맺어진 인연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마라톤이 포교 활동이 되어버린 셈”이라며 “출가 목적이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마음인데, 탁발 마라톤은 나와 주변 모두를 이롭게 한다.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주변 사람들도 기부를 통해서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중단된 미대륙횡단 마라톤을 뛰고 있는 진오스님. 총 5,252㎞에 달하는 이번 마라톤은 스님에게도 큰 도전이다. /사진제공=마하붓다사

앞으로의 계획은 지난해 코로나 사태로 중단한 미대륙횡단 마라톤(5,252㎞)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베트남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민을 돕기 위한 모금 활동이다. 당시 파병된 한국군 역시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마라톤으로 지금까지 전쟁 피해 지역 65개 학교에 화장실을 세웠다. 스님은 화장실 지원사업을 스리랑카, 캄보디아 등으로 확대할 생각이다.


“베트남 어디를 가든 한국에 있다가 돌아간 노동자들이 저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줍니다. 제가 처음 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요. 우리 삶 자체가 나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것 같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만들어집니다. 아름다운 세상에 같이 살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함께 살아가자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럼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하루빨리 찾아오지 않을까요.”


/최성욱 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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