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국적자로 행세하며 세금 안 내다 적발...국세청, 역외탈세자 54명 세무조사

신분 세탁 14명, 부의 편법증식 16명, 국외 소득 은닉 18명 등
기업가치 떨어뜨려 자녀에게 지분 저가 양도한 사주일가
2년간 1.1조 탈루세금 추징, 5건 조세포탈 혐의로 검찰 고발

노정석 국세청 조사국장이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적세탁 등 지능적 역외탈세 혐의자 54명 세무조사 착수 내용을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제공=국세청


#A는 외국 영주권을 취득한 후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해외 부동산을 사들였다. 그는 법인 지분을 자녀에게 이전하는 방식으로 해외부동산을 자녀에게 편법 증여했다. 증여 지분에 대해 현지 과세당국에 증여세를 신고했으나 공제 한도 미달로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유학 기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국내에 거주한 자녀들은 외국 시민권자라는 점을 이용해 국내에서 비거주자로 위장하고 증여받은 부동산 상당액에 대해 증여세 신고를 누락했다. 과세당국은 자녀의 부동산 취득자금 관련 증여세 십수억원을 추징했다.


#사주 B는 그룹 핵심 기업 C사 경영권을 자녀에게 승계(변칙 상속)하기 위한 장기 계획을 수립했다. C사는 해외거래처로부터 무역 중개수수료를 수취하면서 B의 자녀가 운영하는 국내 관계사 명의로 분산수취하는 방법으로 수입금액, 영업이익 등을 고의로 축소했다. C사는 상당한 영업이익이 발생하는 우량기업이나, 자녀에게 지분을 양도하기 직전 수년간만 거액의 결손이 발생했다. 사주의 자녀들은 인위적으로 저평가된 주식을 액면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저가 취득해 세부담을 최소화하며 경영권을 실질적으로 승계했다. 국세청은 사주 및 자녀에게 증여세 등 십수억원, 중개수수료 수입금액을 누락한 법인에 법인세 등 십수억원을 추징하고 통고 처분했다.


#의류업체 사주 D는 가족들이 이주해 살고 있는 E국 현지 개발 정보를 입수하고 투자금을 송금해 본인 및 가족 명의로 은밀하게 다수의 현지 부동산을 매입했다. D는 구입한 부동산을 현지 부동산 개발업체에 거액의 양도차익을 남기고 매각했으나 양도소득 신고를 누락했다. 과세당국은 국외 부동산 매각에 대한 양도세 등 십수억원을 추징하고, 해외금융계좌 과태료 십수억원을 부과한 뒤 검찰에 고발했다.



국세청은 국적 등 신분을 세탁하거나 정교하고 복잡한 국제거래를 이용한 이중국적자, 다국적기업, 사주일가 등 지능적 역외탈세 혐의자 54명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24일 밝혔다.


탈세 유형은 미국·중국 국적 등 신분 세탁, 부의 편법증식, 국외소득 은닉 등 크게 3가지다. 우선 납세의무가 없는 비거주자로 위장해 소득과 재산은 해외에 은닉하고 대한민국의 복지와 편의만 향유하는 이중국적자가 14명이다. 또 기업형태를 외부감사가 없는 유한(책임)회사로 변경하고 은밀한 내부거래를 통해 소득을 이전한 외국계기업이 6개다. 다음으로 재산을 더욱 증식하기 위해 우월한 경제적 지위와 배경을 이용해 복잡한 국제거래 구조를 기획하고, 이를 통해 정당한 대가 없이 부를 증가시킨 자산가 16명이다. 아울러 중계무역·해외투자 등 정상거래로 위장해 소득을 해외로 이전하고, 역외 비밀계좌 개설 등을 통해 국외 은닉한 지능적 역외탈세 혐의자가 18명이다.


국세청은 조사 착수 전 혐의자의 출입국 내역, 국내 사회·경제활동, 가족 및 자산 현황 등을 철저히 검증하고 국내외 수집정보, 국가간 정보교환자료, 해외금융계좌 신고자료 등 과세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해 탈루혐의를 확인했다. 노정석 국세청 조사국장은 “무늬만 납세자로 기능하는 얌체족(체리 피커)들이 생겨나고 있어 국민들에게 깊은 상실감을 주고 있으며, 부의 편중과 자산불평등에 대한 우려를 크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지난 2019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역외탈세 및 다국적기업의 공격적 조세회피 등 역외탈세 혐의자 318명에 대해 동시 세무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이를 통해 2019년 5,629억원, 2020년 5,998억원 등 1조1,627억원에 이르는 탈루세금을 추징했고, 5건을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 또는 통고처분 했다.


/세종=황정원 기자 gard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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