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무도 없는 곳' 연우진 "좋은 작품은 책임감에 대한 보상 같아요"

배우 연우진 / 사진제공=엣나인필름

평소에도 말하기보다 들어주는 편이라는 그의 모습은 꼭 영화 속 창석이 앞에 앉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재하지만 가공된 것 같은, 가공됐지만 실재한 다양한 사연들이 그 앞에 놓였다. 결국 지나고 나면 아무도 없는 곳, 그는 마치 영화처럼 이야기에 녹아내렸다.


‘아무도 없는 곳’ 개봉을 앞두고 만난 그는 “날것의 느낌을 잡으려고 했다”고 영화 속 모습을 설명했다. 아내가 있는 영국을 떠나 7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 창석이 ‘상실’을 경험한 네명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의 작품에서 그는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는다. 잘 들어준다. 자신의 상실과 타인의 상실, 공통점은 연민이다.


“창석은 결핍을 삭히면서 사는 인물이에요. 저와 단편적으로는 다르겠지만, 한계에 부딪히면 선을 넘으려 하지 않는다는건 비슷해요. 오버하는 것보다 내 이야기를 안 하는게 낫고,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에둘러서 어느 선까지만 표현하는데, 그런 부분에 초점을 맞춰 연기하려고 했어요. 캐릭터가 아닌 연우진의 모습이 나오지 않을까 주의를 기울이며 날것의 느낌을 잡으려고 했어요.”


현실일 수도, 허구일 수도 있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최근 개봉한 ‘조제’를 비롯해 넷플릭스 ‘페르소나’ 중 밤을 걷다 등을 연출한 김종관 감독의 특징이다.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하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김 감독은 ‘아무도 없는 곳’을 통해 형식적인 실험에 나섰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인물을 만나는 역할을 통해 그는 연기로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묘한 변화를 느꼈다.


연우진은 김 감독이 연출한 ‘더 테이블’에서 임수정과 함께 에피소드 한편을 만들었다. 앞서 작업하며 믿음이 생겼다는 그는 2주 전 영화를 처음 보고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작품에 임했나’ 할 만큼 김 감독이 글을 풍성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연기자로서 바쁘게 앞만 보고 지내온 시간을 감독님과 함께하는 순간에는 잠시 내려놓고 온전히 그 순간을 느끼게 된다”며 자신에게 꼭 필요했던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배우 연우진 / 사진제공=엣나인필름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에는 4명의 인물이 창석과 만난다. 흐르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미영(이지은), 인도네시아 유학생 남자친구와 이별한 유진(윤혜리), 아픈 아내를 살리고 싶은 성하(김성호), 기억을 사는 바텐더 주은(이주영)까지. 그는 무채색의 느낌으로 그들의 색을 온전히 빛내주는 역할을 한다.


"이주영은 '독전'에서의 이미지가 강렬해서 바텐더 역할이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어요. 대본 리딩도 제일 많이 해서 익숙했는데, 현장에서는 다른 모습이 나온 것 같아요. 분장이 주는 힘이나 바의 미장센 때문인지 몰라도 리딩과 다른 표현이 나와 좋았습니다."


"김상호 선배는 눈을 보는 순간 감정의 일렁임이 컸어요. 막느라고 애썼죠. 이지은(아이유)은 만났을 때부터 '미영' 그 자체였고요. 감독님께서 미영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분위기가 주는 힘이 있었고, 영화의 시작을 편안하게 해준 것 같습니다.“


"윤혜리를 보고는 ‘더 테이블’ 촬영 당시 제 모습이 생각났어요. 선배와 연기를 해야하다보니 긴장도 되고, 준비과정이 짧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인해 현장에서 바로 표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기우였고 자신이 가진 본연의 신선함으로 준비를 열심히 잘 했던데요.”



배우 연우진 / 사진제공=엣나인필름

극중 바텐더 주은(이주영)은 손님들에게 기억을 산다. 교통사고로 잃어버린 기억의 일부분을 이들의 이야기로 채운다.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있다. 연우진에게도 팔고 싶은 기억이 있다. 좋은 기억을 주고 싶다고. 특히 그리움의 기억을 선물해서 받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힘을 더하고 싶단다. 그리움은 삶을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요즘 그리운 것은 건강이다.


“지금 저는 건강해요.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건강이 안 좋아지면, 그 사람과 나눴던 건강한 시간들이 기억에 남더라고요. 애틋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주변 사람들이 모두 건강하기를 바라고, 지금 이 시간을 잘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2009년 데뷔해 13년째, 그가 표현해 온 인물들은 대부분 건강했다. 어둠보다 밝음을, 잔잔한 희망을 이야기했다. 본인 스스로도 순리대로 흐르는 시간이 주는 힘을 믿고 덤덤하게 살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나만의 삶과 연기의 철학, 그리고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붙잡아 온 것은 책임감이었다.


"연기는 하고 나면 항상 후회와 반성을 하게 돼요. 그 부분을 줄이기 위해 매 순간을 책임감 있게 보내려고 합니다. 김종관 감독님처럼 좋은 분들을 만나고, 좋은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건 이런 책임감에 대한 보상이지 않을까 싶어요."


/임수빈 인턴기자 imsou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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