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산업계는 지난 2010년 중국이 센카쿠 열도 분쟁과 관련해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자 큰 피해를 입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모터에 들어가는 ‘네오디뮴(Nd)’ 수급에 문제가 발생하며 네오디뮴 가격이 10배 이상 폭등하는 등 일본 자동차 업계는 희토류 문제로 큰 곤욕을 치렀다.
이후 일본은 호주와 베트남 등으로 희토류 도입선을 다양화하는 한편 희토류 사용량을 줄이거나 기존 희토류 재활용을 위한 산업 생태계 구축에 나서며 위기를 극복했다. 실제 도요타자동차는 네오디뮴 사용량을 절반으로 줄인 신형 자석을 개발했으며 미쓰비시머티리얼스는 모터에서 나오는 네오디뮴 회수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외교적 마찰 발생으로 중국이 ‘희토류 무기화’라는 카드를 꺼내 들 경우 일본과 달리 대응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내에 도입된 희토류 중 중국산의 비중은 2011년 78%에서 2015년 69%, 2019년 59%로 꾸준히 낮아지고 있지만 일본과 같은 공급선 다변화 및 기술 고도화가 이뤄지지 못한 탓이다. 임경묵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센터장은 “일본은 희토류 구입선 다변화 외에도 희토류가 들어간 제품 수거 등 제도적 환경이 잘 발달해 있다”며 “우리나라 또한 희토류 관련 기술에 계속 투자하고 있지만 일본처럼 상용화 단계가 아닌 데다 제도적 뒷받침도 일본 쪽이 훨씬 잘돼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일본·인도·호주 등이 안보 협력체 ‘쿼드(Quad)’를 통해 희토류 공급망 재편을 논의 중인 와중에도 우리 정부는 ‘중국 눈치 보기’ 때문에 희토류 수급망 재편 등에 소극적인 모습이라 ‘중국발 희토류 리스크’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희토류 공급망 재편에 탈중국 경험을 쌓은 일본이 목소리를 높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상황에서 한일 관계를 풀지 못하고 있는 우리 정부로서는 더욱 대응하기가 어렵다.
25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세륨화합물(37.3%), 란타화합물(16.5%), 산화이트륨(78.5%) 등 주요 희토류의 일본 수입 의존도가 크게 높아졌다. 반면 관련 제품의 중국 의존도는 각각 15.3%, 71.6%, 18.1%로 10년 전과 비교해 크게 줄었다. 관련 수치만 보면 일본의 ‘희토류 무기화’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는 쿼드 가입으로 희토류 공급망 목소리를 키우고 있는 일본보다는 중국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하다. 미국과 일본·인도·호주 등이 쿼드를 통해 희토류 확보에 나서는 등 희토류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에서도 ‘전략적 모호성’만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국이 11년 전 일본을 상대로 희토류 카드를 꺼냈던 만큼 중국이 한국에도 희토류를 무기로 압박을 가할 수 있다”며 “이제는 확실히 쿼드를 중심으로 한 미국·일본 등과의 협력을 강화해 희토류 공급망을 새로 짜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최근 2년간 희토류 수급 문제와 관련한 정부 주도 회의가 딱 두 차례 진행될 만큼 정부의 대응책 마련은 아직 미흡하다. 산업부에 따르면 2019년 6월 개최한 ‘희토류 수급 상황 민관 점검 회의’에서 정부의 희토류 비축 물량 및 업계 재고량 파악 등이 논의됐으며 지난해 2월 개최된 ‘코로나19로 인한 희토류·희소금속 공급망 점검’ 회의에서는 희토류 수급 차질 현황과 정부 대응 방향 등이 이야기됐다. 이에 대해 윤 의원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디스플레이같이 제작 단계에서 희토류가 많이 필요한 제품의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희토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와 관련해 산업부의 보다 적극적인 모습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는 지금처럼 유지하면서 쿼드 가입국을 적극 공략하는 방식으로 희토류 수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 산업부는 윤영석 의원실이 희토류 수급 문제를 질의하자 답변 자료를 통해 “호주나 미국과 같은 희토류 보유 국가와 자원 협력 강화 등을 통한 수입선 다변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산업부가 언급한 미국과 호주 모두 중국 견제를 위해 출범한 쿼드의 핵심 멤버라는 점이다. 우리 측이 미국의 쿼드 가입 요청에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고 중국과의 관계에도 모호성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공급망 재편에 나서는 이들이 순순히 우리 측에 희토류를 공급해줄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안보 관련 문제가 통상과 기술 패권 문제로 확대되고 있는 현 상황을 감안하면 한국도 중국과 미국 중 한 곳에 줄을 서야 할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며 “민주주의라는 가치와 경제력 및 첨단 기술력 등을 감안하면 미국 쪽과 같이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세종=양철민 기자 chopin@sedaily.com, 세종=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 조양준 기자 mryesandn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