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물가를 억누르는 것은 기저 효과로 인해 2분기 물가가 예상보다 더 뛰어오를 수 있는데다 선거라는 변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2분기의 경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저물가를 기록했던 만큼 전년 동기와 비교하는 물가의 특성상 올 2분기 물가 상승률이 크게 오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억누른 물가는 코로나19 이후 회복하는 경제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원재료 가격이 상승하는 등 가격 인상 요인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나 물가를 통제할 수 없고 한꺼번에 튀어 오르는 물가는 그만큼 경제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전기료 등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하면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공기업의 적자를 메워야 한다는 것도 문제다. 여기다 기업들의 임금 인상 요인도 2분기 이후 물가에 반영되는 만큼 오름폭이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
29일 통계청의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소비자물가지수는 104.84(2015년=100)로 지난 2019년 1분기 이후 가장 낮았다. 코로나19 영향이 본격화하며 지난해 5월에는 물가가 전년 동기 대비 0.3% 떨어지는 ‘마이너스 물가’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물가가 하락한 적은 1965년 물가 통계를 집계한 이래 55년간 두 번뿐이다. 최근 물가에 대한 정부의 민감한 반응은 이러한 기저 효과 탓에 올 2분기 물가가 크게 뛰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다음 달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물가 상승으로 인한 민심 악화를 우려한 것이다. 먼저 불똥이 튄 곳은 전기료를 비롯해 국민의 가격 체감도가 높은 공공요금이다. 한전은 올 2분기 연료비 조정 단가를 직전 분기와 같은 1㎾h당 -3.0원으로 책정했다고 22일 발표했다. 원가연계형요금제(연료비연동제) 도입에 따른 산정식대로라면 2분기 연료비 조정 단가는 ㎾h당 -20전으로 직전 분기 대비 ㎾h당 2원 80전이 상승해야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공공요금을 억눌렀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서울시가 오랫동안 추진해온 대중교통 요금과 수도료 인상도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말 ‘대중교통 재정 손실 관련 국비 보전’을 주제로 공청회를 열고 지하철·버스 요금 인상을 추진하려 했지만 무산됐다. 코로나19 여파로 서울 지하철·버스 업계의 적자는 1조 5,000억 원에 달하는 상황이지만 서울 지하철과 버스의 기본요금은 2015년 인상된 후 6년째 그대로다. 서울시 수도 요금이 마지막으로 개편된 것은 2012년이다.
최근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자 정부는 가공식품 가격 단속에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8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6개 주요 식품 기업과 간담회를 열었다. 이를 두고 농식품부는 “최근 원자재 가격 인상 등으로 인한 기업들의 애로 사항을 청취하고 해소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설명했지만 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식품 업계의 한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반발 때문에 가격 인상을 부담스러워하는 식품 업체들은 2~3년의 기간을 두고 원가·인건비 등 제반 사항을 충분히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한다”면서 “그럼에도 정부가 기업 고유 권한인 가격 정책에 대해 압박하는 것은 정상적인 경영 활동에 큰 부담”이라고 토로했다.
문제는 유가·곡물가 등 원가가 상승하는 상황에서 억누른 물가는 언젠가 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국내 석유 사용량의 70%가량을 차지하는 두바이유 가격은 올 1월 첫째 주 배럴당 53.12달러에서 2월 첫째 주 57.34달러, 3월 첫째 주 63.31달러로 꾸준히 오르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집계하는 세계 식량가격지수는 지난달 116으로 전월 대비 2.4% 올랐다. 9개월 연속 상승해 2014년 7월 이후 최고치다.
최근 정보기술(IT) 기업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임금 인상 바람과 더해지면 물가가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 교수는 “그동안 돈이 많이 풀린데다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되면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에 선거 후에는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며 “주택 가격 상승이 임금을 자극했고 임금 상승에 따라 농산물 등 생활물가가 오르는 악순환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내년에 대선을 앞두고 있어 하반기에도 정부의 물가 통제 기조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 교수는 “전기료가 오르면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이 나올 테니 동결한 것이겠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겠느냐”면서 “한전은 주식회사인데 손실이 누적되면 주주들과 국민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세종=박효정 기자 jpark@sedaily.com, 박형윤 기자 mani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