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국민 개인이 기본소득을 통해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하여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다.”
더불어민주당도, 기본소득당도 아닌 국민의힘 정강·정책 제1호다. ‘기본소득’ 어젠다가 좌파 정당만의 전유물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기본소득 개념은 20세기 중반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자유시장주의 학자 밀턴 프리드먼에 의해 제안됐다고 한다. 1970년대 미국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법까지 만들어 도입하려 했다가 무산됐고, 스위스도 2016년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국민투표를 했지만 70%의 반대로 무산됐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막대한 재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본소득이 회자될 때마다 어마어마한 재원을 놓고 ‘포퓰리즘 매표 행위’라 비판받기도 하고, ‘사회주의 배급의 2021년형 표현법’이라며 이념 논쟁까지 벌인다. 오죽했으면 기본소득론의 세계적 권위자인 필리프 판파레이스가 ‘21세기 기본소득’이란 책을 통해 “뒷문을 통해 슬며시 들여와 모두가 변화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라고 기술했을까. 결국 기본소득 논의는 필연적으로 격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일단 시행되면 자체 동력을 통해 스스로 몸집을 키워 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필자는 ‘기본소득’ 도입에 있어 우선은 긍정적인 부분부터라도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AI와 자율주행차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마당에 기술 빅뱅이 뒤바꿔 놓을 우리 삶의 표준을 지금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육체 노동뿐 아니라 인지 노동도 기계로 대체되는 상황에서 막연한 ‘기대 반 불안 반’의 감정을 안고 살아가기보다는 기존 사고의 전환을 통해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편이 훨씬 이득이 아닐까 싶다.
더욱이 빠른 기술 혁신은 필연적으로 글로벌 기업 중심의 심각한 ‘자본 편중 현상’을 초래할 것이 뻔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에서 일부 기업의 상상을 초월하는 초과 이익을 경험하면서 거대 자본에 의한 ‘부의 편중’ 문제는 기본소득을 시급히 논의해야 한다는 현실을 느끼게 한다.
새로운 가난이 오고 있다. 공기업과 민간 기업, 그리고 국민 대다수가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 기준과 원칙을 지금부터 차근차근 논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선거를 틈타 포퓰리즘을 통해 갑자기 도입하게 되면 선의로 포장된 ‘지옥으로 가는 악마의 속삭임’이 될 수도 있다. 1년도 채 남지 않은 내년 대선 판을 달굴 뜨거운 감자이자, 블랙홀이 분명한데 우리의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구경우 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