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민간단체의 보고서보다도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동물학대 수사매뉴얼’을 4년 만에 새롭게 개정해 내놨다. 학대뿐 아니라 불법생산 및 판매 등 동물 관련 범죄 전반으로 대상을 넓히고 최신 판례를 토대로 한 구체적 대응요령을 담은 것이 특징이다. 다만 일선 경찰관들이 체득하려면 직장교육에 관련 내용을 포함시키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상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은 지난 2017년 발간된 ‘동물학대사범 수사매뉴얼’을 전면 개정한 ‘동물대상범죄 벌칙해설’을 제작해 이달 중 전국 시도경찰청과 부속기관, 일선 경찰서에 배포할 예정이다. 총 16쪽짜리로 구성된 기존 수사매뉴얼은 대부분 동물보호법 조항 설명에 할애됐고, 수사 시 유의사항은 3쪽에 불과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이러한 수사매뉴얼의 부실을 지적했고, 김창룡 경찰청장이 개정을 약속한 뒤 경찰청은 관련 작업에 착수했다.
이번 개정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동물학대로 한정했던 기존 매뉴얼과는 달리 미등록·미신고된 동물판매 및 생산행위와 유기·유실동물 포획, 맹견 관리소홀 등 동물 관련 범죄 전반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동물 대상 범죄와 관련된 대법원·하급심 판례와 최신 법령, 대응요령 등을 담아 일선 경찰관들에게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동물 대상 범죄는 동물 스스로 피해 상황을 입증할 수 없는데다 학대 기준도 애매해 경찰 수사에 애를 먹었던 게 사실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다양한 판례 분석을 통해 일선 경찰관들이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개정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선 경찰관들이 체득해 현장 활용도를 높이려면 경찰 내 직장교육에 관련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은주 의원은 “아무리 좋은 매뉴얼이라도 활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라며 “경찰 직장교육에 포함시켜 의무적으로 관련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동물 관련 범죄 발생 시 경찰이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상설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학대 여부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 경찰 수사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전문성을 가진 수의사나 동물단체직원 등이 참여하는 자문위원회 등 상설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기문 기자 doo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