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교 칼럼]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고난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유럽이란 큰 울타리 박차고 나간 英
대EU 수출 급감, 산업·경제 빨간불
脫영국 바람에 금융·서비스 쑥대밭
이 상황서 英국민은 어떤 생각할지


영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440만 명대로 유럽에서 프랑스 다음으로 많고 사망자도 13만 명에 육박해 유럽에서 가장 심각한 국가다. 하지만 인구 5,000만 명 이상의 국가 중에서는 코로나 백신 접종 실적이 가장 우수하다. 지금까지 고위험군 3,000만 명이 우선적으로 백신 접종을 받았고 내달 중순까지 50대 이상 전체, 7월에는 모든 성인에게 접종을 완료할 계획이다.


최근 유럽연합(EU)이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영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조치함에 따라 영국도 백신 물량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영국은 EU가 백신을, EU는 영국이 백신 원료 물질을 수출 금지했다고 상대를 비난하고 있다.


이번 일로 영국과 EU 모두 체면을 구겼다. ‘하나의 유럽’은 옛일이 됐고, 유럽과 거리를 둬왔던 영국의 고립주의는 코로나 상황에서 더 심각해지고 있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브렉시트(Brexit)가 없었다면 이러한 갈등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양측 모두 EU 차원의 보건 정책을 따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영국 경제성장률은 지난 300년간 최악의 수준인 ?10%대를 기록했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4%대로 지난해 경제 급락의 기저 효과를 기대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못지않게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국민투표 이후 브렉시트 때문에 수상이 세 번 바뀌었다. 2020년 1월 말 브렉시트 결정 이후 영국과 EU는 미래 관계 협상에서도 서로 감정이 많이 상했다. 코로나 위기로 코너에 몰린 보리스 존슨 총리가 EU가 요구했던 북아일랜드의 EU 관세 체제 잔류를 수용해 영·EU 간 자유무역협정 등을 포함한 모든 쟁점에 대한 협상이 완전히 타결됐다. 한쪽에서는 EU로부터 독립했다고 축배를 들고 있지만 이제부터 영국은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


올해부터 브렉시트가 발효되면서 지난 40여 년간 유럽 체제에 익숙해 있던 영국의 산업과 경제 제도 곳곳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통관 심사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위생 검역·기술 표준 등에 영국식이 적용되면서 영국의 대EU 무역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도버항, 영국과 프랑스 해저의 유로터널 운영에 애로가 생겨 화물이 적체되고 유럽 국가들이 영국발 입국을 차단하는 등 비회원국에 대한 차별적 조치가 발동했다. 지난 1월 영국의 대EU 수출은 41%나 줄었다.


연어 등 수산물과 신선 식품의 대유럽 수출이 중단되는 등 아직도 수출 애로가 적지 않다. 위스키· 초콜릿 등 가공식품의 유럽 수출은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1월 치즈의 유럽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6분의 1 수준으로 줄었고, 위스키는 4분의 1, 초콜릿은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탓도 있지만 비EU 회원국에 대한 비관세 장벽 때문이다.


런던을 중심으로 한 금융업과 비즈니스 서비스 산업은 쑥대밭이 됐다. 영국은 대표적인 서비스 수출 국가이고, 이들 서비스 분야에서 국제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EU 탈퇴를 전후해 런던에 거점을 둔 많은 글로벌 금융 기관들이 탈영국을 단행했다. 브렉시트 이후 유로화 표시 주식을 굳이 런던에서 거래할 이유가 없어졌기에 주식 시장도 활기를 잃었다. 이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 유럽 1위의 주식 거래 도시가 됐다.


코로나 이후 전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와 미중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가 세계무역기구(WTO) 수장에 취임했지만 악화된 글로벌 통상 환경을 개선시키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이라는 큰 울타리를 박차고 나온 영국은 허허벌판에 내몰린 처지가 됐다.


코로나 백신으로 집단 면역을 형성하더라도 영국 수출의 절반이 향하던 유럽 시장 접근에 대한 비관세 장벽으로 수출 시장이 줄어든 데다 코로나로 인한 전 세계 수요 위축으로 영국 경제는 앞으로 몇 년이 지나야 이전 수준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도 영국 국민들은 브렉시트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을까.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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