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광주비엔날레…기다림 끝에 활짝 핀 '미술의 봄'

샤머니즘 통한 '치유의 힘' 탐구
민정기·이갑철 등 450여점 출품
메인 1전시실 무료개방·SNS 소통
코로나 여파 두차례 연기 후 개막
세계 비엔날레 '해빙 신호탄' 주목

4월 1일 개막하는 제13회 광주비엔날레 1전시관 전경. 김상돈의 ‘카트’는 마트에서 볼 수 있는 카트에 부적과 꽃, 촛불 등을 달아 상여를 구현한다./사진=광주비엔날레

커다란 눈을 치켜뜬 도깨비가 금방이라도 그림을 뚫고 나와 천둥 같은 불호령을 내릴 것만 같다. 묘한 문자 박힌 부적과 무당집에서 볼법한 꽃장식을 달아 붙인 카트(cart)는 차례로 늘어서 그 옛날 죽은 이를 떠나 보내던 상여로 탈바꿈했다. 전시실 안에는 바깥 세상과는 다른 영적인 기운이 감돈다. 길(吉)과 흉(凶), 화(禍)와 복(福) 그리고 생(生)과 사(死). 자연의 섭리 앞에 한없이 작고 나약한 인간의 존재를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마주했던 1년이기 때문일까. ‘샤머니즘’이란 네 글자로 수렴하는 이 공간의 무게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이승의 안녕과 회복을 기원하는 다양한 작품이 전시된 이곳은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으로 지난해부터 개막을 두 차례나 연기한 끝에 열리는 이번 행사는 그렇게 세계 샤머니즘을 소재로 한 ‘치유의 힘’으로 관객들을 맞이한다.


올해로 13회째를 맞은 아시아 최고 권위의 광주비엔날레가 4월 1일부터 5월 9일까지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Minds Rising, Spirits Tuning)을 주제로 열린다. 코로나 19 여파로 전 세계 주요 미술 행사가 줄줄이 취소된 상황에서 광주비엔날레의 개막은 미술계의 봄을 알리는 소식이자 비엔날레 해빙의 신호탄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예년보다 행사 규모가 위축되기는 했지만, 40여 개국 출신 작가 69명이 이번 비엔날레에 참가했다. 신작 40여 점을 포함해 총 450여 작품을 비엔날레 메인 전시관의 5개 전시실을 비롯해 국립광주박물관, 호랑가시나무 아트 폴리곤, 광주극장 등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제13회 광주비엔날레는 1층 전시장을 무료로 대중에 공개한다. 한국의 샤머니즘을 비롯한 무속 의식 체계를 탐구하는 작품들이 이곳에 전시된다. /사진=광주비엔날레

올해 행사는 한국적 샤머니즘을 비롯한 무속의 의식 체계를 깊게 탐구한다. 이성을 중시하는 서구 합리주의에서 벗어나, 그동안 억압돼 온 비서구 세계의 정신을 살펴보는 자리다. 공동예술감독인 데프네 아야스와 나타샤 진발라는 "토착 생활 문화와 제도로 규정할 수 없는 연대의식, 모계적 체계, 신과 우주를 이해하는 원리 등에 잠재된 비주류적 유산 등을 탐색해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갑철의 ‘충돌과 반응’/사진=송주희기자

비엔날레 역사상 최초로 무료 개방되는 메인 전시관 1전시실에서는 이갑철 작가의 사진들(충돌과 반응)이 가장 먼저 관객을 맞이한다. 눈에 보이는 육신은 껍데기일 뿐이요,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영적으로 교감하는 무속인의 찰나의 순간이 흑백의 사진에 담겨 더 강렬하고 화려하게 다가온다. 제주와 충남, 태안, 경북 예천 등에서 촬영된 이들 사진은 ‘소머리를 머리에 인 무당’과 ‘영동굿’, ‘장승’ 등 억압 받고 주목 받지 못한 시골 풍경, 한국의 무속 세계를 조명한다.



민정기 화백의 무등산천제단도(왼쪽)와 무등산가단문학정자도(오른쪽)/사진=송주희기자

민중 미술의 선구자인 민정기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대표작인 벽계구곡도에는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의병과 사상가들의 모습이 남겨있고, 이번 비엔날레를 위해 선보인 신작 무등산천제단도와 가단문학정자도에선 광주 역사와 그곳 사람들의 삶이 촘촘하게 스며든 무등산의 지형도를 담아낸다. 각 작품 사이에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샤머니즘적 돌 부적을 설치한 구성도 인상적이다.



김상돈의 ‘카트’/사진=송주희기자

김상돈의 ‘카트’/사진=송주희기자

김상돈 작가의 ‘카트'는 이번 비엔날레 주제와 가장 어울리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트에 부적과 꽃, 촛불, 막걸리 병을 달아 상여를 구현한 그의 작품은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배를 콘셉트로 한 것으로 집단 지성과 죽음이 상여를 통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준다. 모두에게 개방된 이 공간에서 펼쳐지는 무속 의식을 향한 깊은 성찰에는 다양한 세대의 관중이 이 세계의 불안정한 상태를 인지하고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을 되찾는 치유의 시간을 갖길 바라는 이번 비엔날레의 취지가 담겨 있다.


국립광주박물관에서도 생과 사에 대한 고찰이 이어진다. 이곳에서는 테오 에쉐투와 트라잘 하렐, 갈라 포라스-킴, 세실리아 비쿠냐 등이 죽음과 사후 세계, 영적인 오브제의 기능 회복, 신체의 육체적 한계 등의 개념을 다룬 신작을 전시한다. 개관 85주년을 맞은 광주극장에서는 주디 라둘이 라이브 오케스트라 공연을 펼치고 열화상 카메라를 통해 기술·생물학적 이미지에 대해 설명한다. 광주의 근대사를 간직하고 있는 남구 양림동 호랑가시나무 아트 폴리곤에서는 시셀 톨라스와 파트리샤 도밍게스의 작품이 전시된다.


올해 비엔날레는 온·오프라인 프로그램을 유기적으로 연계했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코로나 19 여파로 애초 예정(2월 26일 개막)보다 전시 일정이 늦춰지고 행사 규모도 크게 줄었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채널에서 진행되는 ‘라이브 오르간’, 온라인 저널 ‘떠오르는 마음’, 출판물 등을 통해 더 많은 관람객과 소통하고 비엔날레의 실험 정신을 극대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광주=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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