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우면 니들도 우리 회사(한국토지주택공사·LH)로 이직해라”는 블라인드 글 작성자를 찾는 경찰 수사를 두고도 찬반이 엇갈린다. 수사의 핵심은 해당 글을 LH 직원이 썼는지 여부다. 작성자를 LH 직원으로 추정한 정부는 공직 기강을 무너뜨렸다며 강력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익명 공간이라는 블라인드의 특성을 깨는 수사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결과만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2일 경찰에 따르면 경남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지난달 17일 경남 진주 LH 본사와 블라인드 운영사 팀블라인드를 압수 수색했다. 수사의 발단은 LH 직원으로 추정되는 회원의 조롱성 글이다. LH가 이 글로 직원 등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고발에 나선 것이다. 정부는 공직 기강을 훼손한 사건이라며 이 사안을 무겁게 보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가능한 방법을 통해 조사하고 책임을 묻겠다”고 강도 높은 발언도 했다.
하지만 블라인드 회원들은 수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익명 공간인 블라인드의 특성을 무시한 수사라는 점과 ‘나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이 동시에 나온다.
블라인드 회원인 직장인 A 씨는 “비아냥거리는 식의 글은 잘못이지만 익명 게시판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글”이라며 “(게시글을 수사하면) 블라인드에서 누가 회사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회원인 직장인 B 씨도 “익명 기능이 있는 커뮤니티에 대한 수사는 과도하다”며 “이용자 스스로 부적절한 게시물을 안 올리도록 유도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온라인 게시글에 대한 정부의 개입 범위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4년 경찰은 세월호 집회 관련 수사를 하면서 카카오톡 사용자 2,000여 명의 개인 정보를 압수했다. 피해자들은 5년 후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했지만 압수 수색 당시부터 ‘과잉 수사다’ ‘다른 모바일 메신저를 쓰겠다’는 등 반발이 컸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위해 블라인드의 익명성이 지켜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이번 수사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의견이 엇갈린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LH 사건의) 본질은 비리를 찾는 것이지 ‘나쁜 말’을 한 사람을 찾아내는 게 아니다”라며 “(이 수사는) 대통령을 욕했으니 잡아간다는 식의 논리와 큰 차이를 못 느끼겠다”고 비판했다. 반면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론이 끓고 정의에 대한 상실감이 큰 상황에서 경찰의 조사 자체는 가능하다”며 “게시글에 ‘차명으로 투기한다’는 내용이 있었던 만큼 부패 의혹을 수사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종곤·김태영 기자 ggm11@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