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베리아'에 갇힌 공정위·산업부…정보수집 어려워 정책 실효성 뚝

[무너지는 관료 사회] <상> 방향 잃은 '정책 나침반'
외부인 접촉 어렵고 지리적 고립
공정위 현역-OB 만나도 대화 못해
산업부도 "부처·기업간 협업 한계"



“사람 만나기 쉽지 않은 세종에 위치한 데다 김영란법까지 더해지니 저희 부처의 정보 수집 역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만난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새 각종 규제로 업무 환경이 급격히 나빠졌다고 호소했다. 특히 공정위는 기업이나 시장 관련 정보를 부지런히 수집해야 하지만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기업 내부 고발이나 신고 등에 의지해야 한다고 푸념했다. 공정위가 최근 ‘대기업 위장 계열사 신고 시 최대 5억 원 포상’ 등의 정책을 행정 예고한 것 또한 예전 같지 않은 ‘경제 검찰’의 수사력과 관련이 깊다.


5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공정위 직원들이 최근 가장 선호하는 부서는 기업의 인수합병 심사를 담당하는 시장구조개선정책관 산하의 과(課)들이다. 정보기술(IT) 발달로 점점 교묘해져가는 기업 담합 조사보다는 관련 부서가 기업들의 협조를 끌어내기 쉬운 데다 퇴직 후에도 자리를 옮기기 용이하다는 이유에서다.


공정위의 한 과장급 관계자는 “대형 로펌들로 구성된 대기업 변호인단과 담당 직원 몇 명으로 구성된 공정위 관계자들이 전원회의에서 맞닥뜨릴 경우 공정위 입장에서는 명백한 증거 없이는 대형 로펌의 논리를 이기기 쉽지 않다”며 “내부 전문성을 키우는 수밖에 없지만 지금과 같은 인력 구조하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공정위 내부에서는 최근 한 사무관이 로스쿨로 자리를 옮긴 것 또한 이 같은 ‘인력 부족’의 영향 때문으로 보고 있다.


특히 공정위 직원들은 내부 규제 때문에 옛 상사들의 조사 노하우를 전수받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공정위는 외부인 접촉 관리 규정을 통해 △대기업에서 공정위 관련 업무 취급자 △공정위 관련 사건 수임이나 담당 경력이 있는 변호사나 회계사 △대기업이나 로펌에 취업한 전직 공정위 공무원 등을 만날 경우 5일 이내에 감사 담당관에게 별도 보고하도록 규정했다. 한 공정위 관계자는 “최근 상갓집에 갔는데 공정위 현역 직원과 옛 직원(OB)들이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다른 테이블에 어색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봤다”며 “서울에 자리한 데다 김영란법 영향에서 자유로운 국회 대비 공정위의 정보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어 정치권의 이런저런 압박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세종이라는 지리적 위치가 정책 실효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오후에 회의를 하다가 식사 시간이 되면 응당 저녁을 함께하며 협의를 연장하고는 했는데 이제는 회의만 마치면 바로 나와야 한다”며 “기업의 속사정을 알아야 실효성 있는 정책이 나오는데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세종=양철민 기자 chopin@sedaily.com, 세종=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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