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주주 눈치에…대기업 배당 1년새 60%↑ 12조 늘렸다

[코스피 시총 톱30 작년 배당금 분석해보니]
코로나로 투자 못한 현금 쌓인데다
동학개미 열풍 속 주주 목소리 커져
LG화학은 배당금 2,000원→1만원
"증시 밸류에이션 높여줄 계기"에
"성장 위한 투자여력 감소" 지적도


국내 대기업이 지난해 주주들에게 지급한 현금 배당 규모가 1년 새 60% 이상 급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제대로 된 투자 지출이 이뤄지지 못하면서 현금이 쌓인 가운데 개인의 주식 투자 열풍과 외국인·기관투자가들의 거센 배당 요구 확대 등이 맞물린 결과다. 하지만 주주 친화 정책을 앞세운 배당의 급격한 확대는 기업의 장기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 재원 여력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5일 서울경제가 국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시가총액 상위 30위사의 2020년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주식 배당금이 모두 30조 3,443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9년 주식 배당금 합계가 18조 8,926억 원 규모였던 것과 비교해 불과 1년 만에 60.61%나 급증한 수치다. 앞서 이들 기업의 주식 배당금은 2018년의 경우 전년 대비 28.53% 늘어나는 데 그쳤고 2019년에는 오히려 3.28% 줄어들었다.


전문가들은 대기업들의 배당 확대가 개인투자자의 급증 등 주식시장 활성화와 관련이 깊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뜨거운 상황에서 배당성향 증대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 LG화학(051910)의 경우 지난해 배터리 부문의 회사 분할을 결정하며 개인주주들을 달래기 위해 배당성향을 큰 폭으로 높였다. LG화학의 주당 배당금은 2019년 2,000원에서 지난해 1만 원으로 크게 늘었고 현금 배당성향도 49%에서 151%로 껑충 뛰었다. SK텔레콤이 중간 지주회사 설립과 사업회사 분리를 결의하며 분기 배당을 실시하겠다고 밝힌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금까지는 일년에 최대 두 번 배당하는 중간배당을 했지만 앞으로는 일년에 네 번까지 배당하는 분기 배당을 하겠다며 소액주주 달래기에 나선 것이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기업들의 투자가 위축됐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익을 낸 기업도 대규모 투자에는 부담을 느끼며 벌어들인 돈의 상당수를 투자 대신 현금 배당으로 지출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LG전자(066570)는 지난해 2조 638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는데 이중 10%가 넘는 2,384억 원을 배당금으로 책정해 눈길을 끌었다. 금호석유도 지난해 7,421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는데 이중 1,158억 원의 현금 배당을 결의했다. 이재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해 코로나19로 기업들이 투자를 올스톱한 상황에서 현금성 자산을 늘리는 현상이 두드러졌는데 쌓아둔 현금을 배당으로 연결시킨 것”이라며 “또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배당을 늘리는 게 좋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각종 세금을 감면받기 위한 기업들의 고육지책이라는 분석도 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들의 현금성 자산이 늘면서 법인세 부담이 커지고 있는데 쌓아둔 이익금을 배당으로 나눔으로써 주주 가치도 제고하고 세금 부담도 더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LG전자는 지난해 배당을 대폭 늘리고도 현금성 자산이 5조 8,963억 원에 달했는데 그 결과 법인세가 전년 대비 2배 늘어난 808억 원에 달했다. 삼성전자(005930)가 오너들의 상속제 재원 마련을 위해 특별배당을 지급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배당금은 20조 3,381억 원에 달해 전년도 9조 6,192억 원 대비 111%가 증가했다.


기업들의 배당 확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투자 전문가들은 국내 증시의 밸류에이션을 높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호평하는 모습이다. 이 연구원은 “이익이 안 받쳐주는데 무리하게 배당을 한다면 큰일이지만 현재 국내 대기업들은 순이익이 확대되는 국면”이라며 “배당성향이 높은 기업들에는 외국인투자가들도 관심이 많기에 대기업들의 배당 확대는 좋은 투자 유인 요소로 작용하고 증시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 투자 대신 배당을 택한 상황을 마냥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나온다. 주주로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기업의 성장성 악화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기업이 다른 투자처를 통해 이익을 낼 수 있는 기회가 감소하면서 이익을 배당으로 돌린 것”이라며 “국내 대기업들이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투자를 늘리기보다 주주에게 돌려주는 방식을 선택하면서 배당금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혜진 기자 sunset@sedaily.com, 김경미 기자 kmkim@sedaily.com, 이승배 기자 bae@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