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경영진과 사사건건 대립하던 금융권 노동조합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동안 추진했던 ‘노조추천이사제’보다 사측과 상생하며 주주가치를 올리는 데 전략의 방점을 찍고 있다. 네이버·카카오 등 빅테크의 금융 공습으로 위기감이 커진데다 이념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등 젊은 층의 목소리가 커지고 투쟁 일변도의 금융 노조 문화에도 변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풀이된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가장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는 곳은 강성 노조로 유명한 KB금융이다. 문훈주 우리사주조합장은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6년간 노조추천이사 도입을 추진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회사와 조합이 협력과 상생을 통해 기업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은 문 조합장의 사견이 아니라 KB금융 우리사주조합원들이 지난해 말 선거에서 표를 통해 보여준 공통된 인식이다. 지난해 12월 선거에서 주주가치 제고를 통한 조합원 재산 증대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문 조합장은 63.5%의 표를 받아 노조추천이사를 공약으로 내건 류제강 현 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을 큰 격차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문 조합장은 “노조추천이사제를 추진한 결과 이룬 것이 무엇이냐는 인식이 조합원 사이에서 퍼진 것 같다”고 풀이했다. 그는 “현실이 있고 나서 이상이 있다는 MZ세대의 현실론과 빅테크의 금융 공습으로 인한 직원들의 위기감이 표심에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노사 상생으로 주가를 올리고 이를 통해 우리사주를 가진 조합원의 재산을 늘리는 실용론이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또 내부에서 다투기만 하다가는 빅테크에 시장을 잠식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금융지주 중 우리사주 지분율이 가장 높은 우리금융지주 우리사주조합(지분율 8.4%)도 비슷하다. 우리은행 노조 고위 관계자는 “노조추천이사제 추진을 통해 노조가 선명성 경쟁을 하면 시장도 부정적으로 바라볼 것”이라며 “지금도 임시 주주총회 소집 요구 등 경영진을 견제할 장치는 있으므로 사측과의 공생으로 기업 발전을 꾀하고 시장에서 우리금융의 가치를 올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태규 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