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1932~2006)은 ‘비디오아트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비디오 조각에서 큰 업적을 이뤘는데, 그로 인해 미처 못 보고 놓치기 쉬운 백남준의 정수가 영상입니다. 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카이브를 가진 유일한 기관으로, 미술관이 소장한 아날로그 비디오테이프 2,300여 점에 누구나 접근해 백남준의 진짜 면모를 만날 수 있는 ‘백남준디지털서비스플랫폼’(가칭)을 연내 출범할 계획입니다.”
김성은(사진)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5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미술관의 향후 활동에 대해 이같이 밝히며 “백남준의 비디오테이프를 소장하고 있는 기관은 전 세계에 백남준아트센터가 유일하다”면서 “전에는 연구자나 관심 있는 분들도 미리 예약해서 미술관 장비를 통해 보는 방법밖에 없었지만, 최근 2~3년 간 디지털화를 진행해 올해 본격적인 공개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남준 타계 직후 그의 조카이자 저작권 상속자인 하쿠다 켄은 뉴욕 소호에 있던 백남준 작업실의 모든 자료를 미국 국립 스미소니언미술관에 기증했다. 대형 트럭 7대 분량에 ‘먼지까지 쓸어 담은’ 것으로 전하지만 작품의 핵심인 영상 자료를 백남준아트센터가 확보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김 관장은 “생전에 백남준 선생이 미술관 운영을 위한 포괄적 사용을 허락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디지털서비스플랫폼이 문을 열면 국내 관람객은 물론 해외 연구자들의 관심도 높을 전망이다. 인공위성 프로젝트로 유명한 대표작 ‘굿모닝 미스터 오웰’ ‘글로벌 그루브’ 등이 우선 공개될 가능성이 높다.
영상 소스 제공 방식에 대해 김 관장은 “작품으로는 완성된 영상만 접하는데 아카이브 중 푸티지(미편집 원본) 소스를 보면 백남준이 어떤 것을 탐구하고 완성에 이르렀는지 흥미로운 대목이 많다”면서 “관람용으로 제작된 영상이 아닌 만큼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지, 관객와 연구자가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고 영감 얻을 수 있을지 체험까지 고려해 시스템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백남준은 지난 2019년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에서 시작된 대규모 회고전이 미국,싱가포르 등지의 순회전으로 이어지는 중이다. 한국은 제외됐다. 저작권자인 장조카 하쿠다 켄이 국내 미술기관의 활동에 비협조적인 영향이 크다. 김 관장은 “지난 1월 29일 백남준 기일의 추모재 때 코로나19로 방한하지 못한 대신 보낸 영상에서 예년과 달리 백남준아트센터를 언급하는 등 미술관의 활동에 대해서는 (저작권자도) 잘 알고 있다”면서 “저작권자이기에 존중하면서도 함께 활동할 수 있는 타개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 9월 임명된 김 관장은 삼성미술관 리움의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기 전 2011~2014년 백남준아트센터의 학예연구원으로 일한 인연이 있다.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지난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계획했던 국제 교류를 미뤄야 했던 상황이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김 관장은 “팬데믹 상황이 세계가 서로 연결돼 있음을 새삼 각인시켰 듯 감염병의 시대는 백남준과 그가 지향했던 가치들을 더 깊이 고민하는 계기였다”면서 “우리 미술관 소장의 ‘달은 가장 오래된 TV’처럼 백남준은 세계 각국에 있으면서도 같은 달을 바라보고 그 달을 통해 우리가 서로의 만날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해 전 지구가 연결됐다는 점을 상기시켰다”고 강조했다.
내년은 백남준 탄생 90주년의 해다. “100년 뒤, 300년 후를 내다봤던 백남준”을 강조한 김 관장은 백남준의 협업 철학에 방점을 찍고 다채로운 국제 행사를 계획 중이다. 그는 “백남준은 1970년대부터 미국의 방송국과 일하면서 기관과 협력했고 동료 작가와도 협업하며 순발력과 기획력, 격조높은 인간성도 보여줬다”면서 “해외 기관에서 들어온 여러 제안 가운데 가장 ‘백남준다운’ 국제적 네트워크를 보여줄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전국 공립미술관 평가 인증에서 소장품과 아카이브 연구·관리 분야 1등을 차지했을 정도로 위상이 높다. 박물관·미술관에 가상현실과 인공지능 등을 활용한 콘텐츠를 접목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2021년 지능형(스마트) 박물관·미술관 기반 조성 사업’의 지원 기관으로도 선정됐다.
/글·사진(용인)=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