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가 7일 “인플레이션 경계감이 경기회복에 제약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과도한 우려가 나오지 않도록 정부 차원에서 생활 물가를 관리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시장에서는 “정부가 인플레이션 경고음을 점차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함께 나왔다. 홍 부총리가 물가 상승과 경기회복의 연결 고리에 대해 공식 석상에서 발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획재정부에서는 김용범 전 1차관이 인플레이션 우려를 경고해왔는데 이번에는 홍 부총리로 ‘급’을 올려 우려의 메시지를 낸 셈이다. 정부는 공공요금의 안정적 관리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방침이다.
실제로 올 들어 국내 소비자물가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의 경우 달걀·대파·휘발유 등 주요 품목이 일제히 올라 물가 상승률이 전년 대비 1.5%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본격 확산한 후 가장 높은 수치다. 김승태 기재부 물가정책과장은 “지난해 낮은 물가 상승률의 기저 효과로 인해 4월에도 일시적으로 오름폭이 추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물가가 더 오르더라도 ‘일시적’ 현상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일단 단서를 달아둔 셈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올해 고(高) 물가 행진이 이어질 수 있다는 쪽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 근거는 크게 나눠 세 가지다. 우선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다. 이미 경기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정부가 재난지원금을 비롯해 각종 현금성 지원 대책을 연이어 내놓고 있어 서비스 등 소비 활동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할 조짐을 보이는 것도 국내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최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투자 붐에 따라 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 원자재 투자가 위축되는 점도 원자재 상승의 또 다른 요인이 될 수 있다. 실제 지난달 국내 석유류 가격은 전월 대비 1.3% 올라 1년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여기에 더해 보궐선거 이후 결과에 상관없이 손실보상제, 전 국민 재난 위로금, 최저임금 인상 등이 본격 추진될 것으로 전망돼 ‘정치적 요인’과 그 기대감에 따른 물가 자극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이 같은 인플레이션 우려에 대해 “정부가 주택 가격과 농축산물 가격을 안정시켜 생활 물가를 낮추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이에 따라 이날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다양한 물가 관리 방안을 내놓으면서 총력 대응에 나섰다. 먼저 장바구니 물가를 자극하는 계란 값 상승을 막기 위해 계란 1,500만 개를 추가 수입하는 한편 양파·대파 등에 대한 조기 출하를 독려하고 한파 피해가 발생한 배추는 비축 물량 3,000톤을 탄력 방출하기로 했다.
또 식용옥수수 등 일부 수입 곡물에 대한 0% 긴급 할당관세를 연말까지 한시 적용하고 국제곡물 신속 통관을 위해 선상 검체 채취 허용 등 수입 절차를 개선하며 비철금속 비축 물량도 1~3% 할인 방출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더불어 올 2분기 중 가스요금 등 공공요금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외식업계 지원을 위해 식품 원료 매입자금 대출금리를 인하할 계획이다.
홍 부총리는 “올해 물가 상승률이 2%를 넘길 가능성은 상당히 제한적이지만 물가가 우리 경제 운용에 리스크 요인이 되지 않도록 물가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이억원 기재 1차관은 법인세 세율 인상에 대해 “기업 경쟁력 및 투자 영향 등을 감안해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차관은 최저한세에 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논의해온 디지털세 필라2 차원인지, 아니면 미국이 독자적으로 새로운 어젠다로 추진하는지 국제적으로 관심이 높다”면서 “정부가 미 조세당국과 실무적인 채널을 가동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지금까지 논의했던 맥락이고, 글로벌 논의 과정에 계속 참여해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세종=서일범 기자 squi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