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힌덴버그 리서치

1937년 5월 6일 독일의 힌덴부르크 비행선이 미국 뉴저지 상공에서 착륙을 앞두고 화염에 휩싸이면서 97명의 승객과 승무원 중 35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고 원인은 정전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 큰 문제는 비행선을 띄우는 기체로 헬륨을 사용하도록 설계됐음에도 가연성이 높은 수소를 썼다는 데 있다. 헬륨 독점 생산국인 미국이 나치 독일에 헬륨 판매 금지 조치를 내렸으나 히틀러 정권은 이 비행선을 정치 선전용으로 활용하기를 고집하다가 참극을 자초했다.





2017년 33세의 미국인 투자가 네이선 앤더슨은 ‘힌덴버그(힌덴부르크의 영어 표기) 사고’를 반면교사로 삼아 월가를 바로잡겠다는 포부로 ‘힌덴버그리서치’를 창업했다. 공매도 행동주의를 표방한 힌덴버그는 특정 종목을 공매도한 뒤 관련 보고서를 발표해 수익을 남기는 패턴을 보여왔다. 지난해 9월 ‘제2의 테슬라’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수소 전기차 업체 니콜라를 공격하는 보고서를 낸 시점도 공매도 다음이었다. 이후 니콜라 주식이 폭락한 반면 앤더슨은 스스로 밝혔듯이 ‘큰 규모의 수익’을 챙겼다.


힌덴버그의 직원은 5명의 소수 정예여서 눈길을 끈다. 이들은 헤지펀드이면서도 ‘도덕’을 내세운다. 공격 대상도 회계 부정, 경영진의 악행 등으로 제한한다면서 정의의 편에 선 듯 행세한다. 지난해 말 중국 전기차 업체 ‘칸디테크놀로지’를 저격한 것은 허위 판매로 수익을 날조했기 때문이고 최근 미국 전기 픽업트럭 스타트업 로즈타운을 겨냥한 것도 형편없는 기술력 탓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힌덴버그에 저격당한 니콜라의 트레버 밀턴 창업자가 최근 니콜라 주식 350만 주를 매각했다. “니콜라는 사기 업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투자자들의 더 큰 피해를 사전에 막았다는 점에서 힌덴버그의 정화 능력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 같은 행동주의 펀드는 과거 타이거펀드와 소버린자산운용·엘리엇매니지먼트 등의 행태에서 봤듯이 의인의 가면을 쓴 악당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헤지펀드의 위협을 막기 위해 기업은 스스로 정도 경영을 가다듬고 정치권은 차등의결권·황금주·포이즌필 등 제도 보완을 깊이 고민할 때다.


/문성진 논설위원


/문성진 hns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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