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간병사 A씨는 자신이 돌보던 환자 B씨가 서울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A씨는 B씨의 예금통장과 인감도장을 자신이 보관 중이었으며, 몇 차례 은행 업무도 대신 맡아와 비밀번호도 기억하고 있었다. 현금 인출기로 달려가 확인하니 통장에는 407여만원이 들어있었다.
장례식이 끝난 뒤 B씨의 유족들은 A씨에게 통장과 인감도장을 돌려 달라고 요청했다. 유족으로부터 요청이 온 다음날 A씨는 5회에 걸쳐 365만원을 통장에서 인출했다. 이후 긴급재난지원금이 입급되자 A씨는 다시 4회에 걸쳐 41만원을 인출했다. 통장에 잔액이 600원 가량 남았을 때 A씨는 출금을 멈추고 유족들에게 통장과 인감도장을 돌려주었다.
통장을 돌려받은 유족들은 A씨에게 400여만원의 사용처를 물었다. 이에 A씨는 "B씨가 진행하고 있는 소송을 위임받아 변호사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곧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변호사가 자신은 이미 지난 2019년에 착수금을 받았다고 유족들에게 증언했기 때문이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단독(이동희 판사)는 최근 절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라진 400만원에 대해 “2019년 변호사에게 돈을 지급한 것 외에 2020년에 착수금을 지급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절도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다만 통장, 인감도장, 소송판결문 등을 절취한 혐의에 대해서는 “B씨가 사망하기 전부터 보관하고 있었고 이전부터 상속인 여부가 명확해지면 유족에게 돌려주겠다고 말해왔다”며 “실제 재판 중에 서류를 돌려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한민구 기자 1min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