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넘게 계속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창궐에 전 세계에서 사망자가 300만명을 넘어섰고, 패닉에 빠진 사람들에게선 혐오와 갈등의 물결이 넘쳐흐른다. 새로운 감염병의 시대에 들어서서 모두 고통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류 역사에서 감염병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신경인류학자 박한선과 인지종교학자 구형찬은 신간 ‘감염병 인류’에서 코로나19가 아니라도 결핵·말라리아·에이즈 등 감염성 질환이 전체 사망의 약 4분의1을 점한다고 지적한다.
책은 감염병과 싸워 온 인류의 기나긴 역사를 총체적으로 살피고 있다. 감염병이 어떻게 탄생했고 진화해 온 과정과 더불어 이에 대항하는 면역체계의 진화도 고찰한다. 이 가운데 불과 옷의 발명이 부른 뜻밖의 감염병, 기생충 박멸이 초래한 알레르기 역습에 대한 내용이 흥미롭다.
감염병과 싸우면서 인간성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도 이야기한다. 감염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인간은 혐오, 회피 등의 적응기제를 갖게 되는데, 이를 행동면역체계라고 한다. 저자들은 행동면역체계가 부패한 음식이나 해로운 동물에 대한 회피를 넘어 성관계에 대한 도덕적 기준, 음식 금기, 외국인 터부, 소수집단에 대한 편견 등으로 발전했음을 지적한다. 하지만 혐오와 배제가 감염병과 싸워 온 인류의 진화적 산물이라고 해서 정당화할 수 없다고 책은 강조한다.
저자들은 전염병이 좁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 위해 과도하게 생산력을 증대시키려는 다양한 시도가 불러온 참혹한 결과라고 해석한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생태계를 파괴하고 세계화, 도시화 등을 가속화함으로써 얻은 경제적 이득이 앞으로 계속 발생할 감염병의 대유행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지 책은 반문한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감염병의 확산이 깨운 불안과 두려움, 공포, 강박의 심리적 반응, 혐오와 배제, 차별의 사회적 반응 등 ‘우리 안의 원시인’ 같은 악한 본성에 대한 성찰이라고도 덧붙인다. 2만원.
/박준호 기자 violato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