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수 "열정으로 버틴 20년, 청년 오디의 원동력"

■창립 20주년 맞은 오디컴퍼니
지킬앤하이드·맨오브라만차·스위니토드 등
뮤지컬 불모지서 잇따라 흥행, 신드롬 견인
"'도전'이라 불렸던 작품들, 성장 기반 됐죠"
"흥행 못한 작품도 다수…내겐 소중한 자산"
韓최초 브로드웨이 리그 정회원 새길 개척
세계 겨냥 창작 작품, 음악 영화도 개발 중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은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와 오디컴퍼니의 주요 작품/사진=오승현기자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중략)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걸으리라.’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의 대표곡 ‘이룰 수 없는 꿈’은 현실의 고난에도 기꺼이 깨지고 부서지며 도전하자고 노래한다. ‘용감한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를 자처하는, 세상 사람들엔 그저 미친 노인인 주인공은 자신을 향한 비웃음에 이렇게 답한다. “가장 미친 짓은 현실에 안주하고 꿈을 포기하는 것이다.” 여기 뮤지컬 계의 돈키호테라 불리는 한 남자가 있다. 뮤지컬 불모지에 지킬앤하이드·맨오브라만차·스위니토드·드라큘라 등 대형작을 들여와 흥행시킨 한국 뮤지컬 1세대 프로듀서요, 한국 프로듀서 최초의 ‘브로드웨이 리그’ 정회원으로 끊임없이 도전의 역사를 써 내려온 인물.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은 오디컴퍼니의 수장 신춘수 대표다.


“열정 하나로 버틸 수 있었고, 그래서 20년을 달려올 수 있었다.” 지난 14일 대치동 오디컴퍼니 사무실에서 만난 신 대표는 ‘청년 오디’의 성장 원동력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의 말마따나 척박한 국내 시장에서 ‘뮤지컬 신드롬’을 일으키고, 예상 못 한 변수에 휘둘리면서도 꾸준히 공연을 올려온 건 미친 열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매 작품에 매진하다 보면 1년이 금방 지나간다”며 “사실 20년도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고 솔직한 소감을 전했다.


영화감독을 꿈꾸던 신 대표는 한 뮤지컬 초연 작업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목표를 ‘칸’에서 ‘브로드웨이’로 바꿔 달았다. 그리고 서른을 갓 넘긴 2001년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Open the Door)’는 의지를 담아 오디컴퍼니를 설립했다. 오디의 성장 발판이 돼준 대표작으로는 지킬앤하이드를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은 흥행 효자요 류정한·조승우라는 티켓 파워의 대표작이지만, 2004년 초연 때만 해도 ‘도전’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 작업이었다. 신 대표는 “지킬앤하이드는 당시 뮤지컬 관객들에겐 익숙한 장르가 아니었지만, 흡입력 있는 음악의 힘이 굉장했다”며 “새 이야기를 새 얼굴(배우)과 함께 해보고 싶은 작업이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관객은 이전 작품에선 만나볼 수 없었던 색다른 장르에 호응했고, ‘지킬 신드롬’은 누적 공연 1,410회, 누적 관객 150만 명이라는 기록을 쓰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디컴퍼니는 티켓 오픈과 동시에 매진되는 효자 작품 많기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성적이 저조했던 아픈 손가락도 적지 않다. 신 대표는 “오디에서 만든 40여 개의 프로덕션 모두 훌륭한 자산”이라며 “흥행 면에서 성공하지 못한 작품도 있지만, 완성도를 보완해 다시 관객에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지금은 표 구하기 힘든 맨오브라만차도 2005년 초연 당시에는 기대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작품을 보완해 올린 다음 시즌부터 관객 반응이 폭발하며 15년 넘게 사랑받는 인기작이 됐다. 신 대표는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은 작품으로 타이타닉과 닥터 지바고를 꼽으며 “무대 세트 없이 작은 극장에서 작품 본질에만 집중한 형태로 선보이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며 “관객에게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라고 웃어 보였다.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창립 20주년 소감을 밝히고 있다./사진=오승현기자

흥행작 돌려 올려가며 마음 편히 있어도 되건만, 창작과 새로운 시도를 향한 욕구는 계속 꿈틀댄다. 그는 일찌감치 브로드웨이 진출해 해외 크리에이티브 팀과 협업하고, 리드 프로듀서로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없는 길’을 만들어가는 그 과정은 결코 ‘꽃길’이 아니었다. 흥행 여부를 떠나 ‘한국에서나 잘하지’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더 아픈 상처였던 적도 있다. 신 대표는 “한국의 프로듀서가 뮤지컬 본고장에서 리드 프로듀서로서 작품을 만드는 건 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꾼 꿈이었다”며 “그건 지금도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서의 경험으로 돈 주고도 못 배울 것들을 체득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작품이 훌륭해야 살아남는다’는 걸 정말 뼈저리게 느꼈고, 프로듀서라는 직책의 역할과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됐죠. 큰 자본이 움직이는 공연에서 평단 못지않게 흥행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게 프로듀서잖아요. 단순히 공연을 좋아하는 아티스트, 공연 예술인을 넘어서는 내 위치와 역할, 그 자리의 막중함을 체감한 거죠.”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창립 20주년 소감을 밝히고 있다./사진=오승현기자

저 높은 곳의 별을 따기 위해 깨지고 부러지길 자처한 지난 20년이었다. 신 대표는 ‘잘 성장했다’는 자축 대신 30세, 40세의 오디를 내다보는 작업을 시작했다. 세계 시장까지 내다보며 창작 뮤지컬 4편을 포함해 총 6편의 작품을 기획·개발하고 있다. 소설 ‘해저 2만리’에서 영감을 받은 ‘캡틴 니모’와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로도 개봉된 ‘위대한 개츠비’, ‘워더링 하이츠’, 세계 최초 모노드라마 뮤지컬로 선보일 ‘리처드 3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의 대결 구도를 그린 ‘피렌체의 빛’과 2012년 미국 트라이아웃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던 ‘요시미 배틀 더 핑크로봇’의 창작에 더해 존 카니 감독의 영화 ‘싱스트리트’ 뮤지컬 버전의 브로드웨이·한국 동시 개막, 토니어워즈 안무상 수상에 빛나는 ‘아메리칸 인 파리’의 국내 초연, 음악 영화 ‘디어 헬렌’ 개발 작업도 한창이다. 신 대표는 “지난 20년간 큰 흥행작이 버텨줬기에 작품 개발이 가능했다”며 “우리 작품을 응원해 준 관객들에게 더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는 게 그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 대표의 요즘 고민은 ‘신춘수 없는 오디’다. 현재 신 대표는 회사 경영을 책임지는 대표직과 작품 제작을 담당하는 프로듀서의 역할을 모두 소화하고 있다. 그는 “회사가 영속성을 가지려면 결국 이 둘을 분리해야 한다”며 “오래가는 터를 닦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변화도 생각해야 하는 시기”라고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예전엔 단순했어요. ‘작품만 잘하면 된다’였죠. 그런데 회사가 커지고 경영과 제작을 모두 맡다 보니 어느 순간 제가 점점 ‘더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있더군요. 과거와 비교해 훨씬 안정적인 상황인데도 말이죠.” 작품에 더욱 집중하고 과감한 도전을 위해서라도 이런 분리는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목표가 분명했기에 그 과정이 힘들지 않았다”는 뮤지컬 프로듀서 신춘수. 그는 “그 과정을 지지해준 배우와 스태프, 관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며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오승현 기자 stor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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