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 사회를 앞당기려면 원자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미국과 유럽은 원자력을 통해 더 싸고 친환경적인 수소를 생산할 계획을 세우고 추진 중입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부 교수는 원자력은 저렴한데다 친환경적 방법으로 수소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전 세계 수소 생산의 95%는 천연가스를 개질(고온·고압의 수증기로 분해)해 만드는 추출수소와 석유화학 공정 부산물로 나오는 부생수소로 이뤄진다. 수소 생산 중 온실가스 배출이 불가피한 것이다. 극히 일부 수소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생산되지만 생산 단가가 높은 게 단점이다. 수소를 얻기 위해 지나치게 비싼 비용을 지불하거나 환경을 오염시켜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지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원자력이 이 같은 딜레마를 해결할 열쇠라고 입을 모은다. 원자력을 활용하면 재생에너지 대비 3분의 1 가격으로 수소 생산이 가능해 효율적인데다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아 친환경적이라는 것이다.
18일 학계 및 전문가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그린수소(생산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수소) 생산을 위해 원자력 활용을 추진하고 있다.
한때 원자력 에너지 축소를 추진했던 미국은 저탄소 친환경 정책을 내세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 뒤에도 재생에너지와 차세대 원전을 병행하고 있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2020년 4월 기준 세계 최대의 원자력 발전국으로 30개 주에서 99기의 원자로를 가동하고 있다. 가동 중인 원전 용량 기준으로 미국이 9만 8,000㎿로 세계에서 가장 많고 프랑스가 6만 2,000㎿로 그다음이다. 3위는 4만 5,000㎿의 중국이다.
미국의 경우 정부와 민간기업이 함께 원자력발전을 통한 그린수소 생산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천연가스 생산 업체 엑셀에너지는 미국 에너지부와 협력해 원자력발전을 통한 ‘고온 수전해’ 방식으로 그린수소를 3~5년 내 생산해 상용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화석연료로 전기를 생산해 애리조나 지역에 공급하는 ㈜애리조나 공공서비스도 미국 에너지부와 협력해 원자력발전을 통한 수소 생산을 추진한다.
프랑스에서도 원자력발전을 통한 수소 생산사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세계 원전 시장에서 선두 기업으로 꼽히는 프랑스전력공사(EDF)는 지난해 수소 자회사 하이나믹스를 설립하고 저탄소 수소 생산에 앞장서겠다고 선언했다. EDF가 운영 중인 58여 개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하는 값싼 전력으로 물을 전기분해해 그린수소를 뽑아낸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미국과 유럽에서는 저탄소 목표를 달성하는 현실적인 방법론으로 원자력발전을 통한 수소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원자력산업회의(FORATOM)는 “그린수소를 저렴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생산하려면 수전해 설비를 돌릴 전기를 지속적이면서도 값싸게 공급받아야 한다”며 “24시간 상시 가동 가능한 원전으로 태양광·풍력의 간헐성을 보완하면 그린수소 생산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원자력발전을 통한 수소 생산 계획이 현재로서는 없다시피하다. 지난달 3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50년 저탄소 실현을 목표로 한 ‘탄소 중립 기술혁신 추진 전략’을 밝혔는데 10대 핵심 기술에서 원자력 관련 기술은 제외됐다. 우리처럼 저탄소를 선언한 국가들이 화석연료의 비중을 낮추고 에너지 공백의 일부를 메우기 위해 탄소 배출이 없는 원자력의 비중을 높이기로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주 교수는 “우리나라 원전은 발전 단가가 저렴해 정부가 원전을 통한 수소 생산을 결심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상용화가 가능한 수준”이라며 “원자력발전을 배제한 채 수소 사회로 가겠다는 구상은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라고 지적했다.
/서종갑 기자 gap@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