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석유공사가 1979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가운데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그림자 빚으로도 불리는 공기업 채무를 국가보증채무에 포함해 공식 관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명시적인 국가보증을 받으려면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만큼 타당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위해 빚을 지는 행위가 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공기업에 대해서도 민간의 대형은행처럼 자본규제를 도입하고, 모럴 해저드를 막기 위해 채권자 손실부담형(베일인) 채권을 공기업 부문에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0일 황순주 KDI 연구위원은 “공기업 부채는 정부 부채와 달리 관리와 통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이 같이 밝혔다. 우리나라의 비금융 공기업 부채는 2017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23.5%로 노르웨이를 제외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KDI가 추정한 우리나라의 금융공기업 부채 역시 GDP의 62.7%를 기록해 기축통화국을 비롯한 다른 OECD 국가보다 많았고 격차도 컸다.
황 연구위원은 이 배경에 공공사업의 자금조달 주체가 정부가 아니라 공기업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일반정부 부채 대비 공기업 부채의 비중 역시 48.8%로 2위인 멕시코(22.8%)의 두 배가 넘었다.
황 연구위원은 “공기업은 정부의 암묵적 지급보증을 무기로 부채의 50% 이상을 공사채 발행으로 일으키고 있다”며 “이는 공기업과 정부의 ‘이중 도덕적 해이’를 초래한다”고 밝혔다. 공기업은 자체 펀더멘털이 아무리 나빠도 정부의 지급보증 때문에 국내 초일류 기업보다 0.20%포인트 낮은 금리로 자금을 빌릴 수 있는데다 이 때문에 공기업이 재무건전성이나 수익성을 개선하더라도 금리 인하 효과가 적다.
정부 역시 무리한 정책사업을 공기업에 할당하고 공기업에 돈을 빌리라고 요청한다. 정부 부채를 일으킬 경우 국회나 재정당국의 엄격한 심사가 필요하지만 공기업 부채는 이 같은 심사 과정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황 연구위원은 “일부 에너지 공기업을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이르게 한 해외자원개발사업도 막대한 공사채로 추진됐다”고 덧붙였다.
황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공사채는 국가가 실질적으로 보증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국가보증채무에서 제외돼 왔다”며 “국가보증채무에 공사채 채무를 산입하고, 위험에 연동하는 보증수수료를 부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공기업에 자본규제를 도입해 재무건전성을 상시적으로 유지하며 유사시 채권자가 손실을 부담하는 공사채를 발행해 자본시장을 통한 공기업 규율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따.
/세종=우영탁 기자 tak@sedaily.com